“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그 내용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들을 찾아 읽은 다음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미국명문사립중고교”“학년에 맞는 고전문학과 근대문학, 현대물을 읽은 후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며 구술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상급학년으로 진학할 수 없다-네덜란드 모든 학교”“중학교에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같은 고전을 통해 프랑스어의 문법을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는 80%의 수업이 집중적으로 고전을 읽고 분석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프랑스”“초등학교 3학년 수업시간에는 그림형제의 동화집에 나오는 필수요소 3가지를 찾아서 동화를 쓰는 프로젝트가 있다.-독일”위의 내용은 어느 매거진에서 소개한 선진외국의 독서교육 중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각각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한눈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독서교육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독서교육을 주요수업으로 진행하는 것과 책의 내용에 대한 분석과 토론은 물론 에세이 쓰기를 필수로 다루는 것은 우리나라 학교에서 하지 않는 일이다. 특히 네덜란드의 독서교육은 그 중 가장 강력하게 다가온다. 15세 정도의 학생이 한 학기 중에 읽어야 할 책의 수(10권)가 현실적이고, 독서의 깊이가 상상 이상이며, 장르가 심층적이고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구술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상급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한다는 것은 독서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그림형제의 동화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독일의 독서교육도 놀라운 일이다. 작품 해석을 하는 토론수업에 참여하려면 그 학기에 다룰 문학작품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것이 독일의 15세 학생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교과에 독서교육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독서교육을 진행하지 않는다. 그나마 초등의 경우 교내 대회중심 독후활동을 하고 다독을 권장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만들어 준 양식에 자신의 독서 리스트를 적어두기도 하고 간단한 소감문을 작성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교사는 확인만 할 뿐 지속적인 지도를 하지 않는다. 지도시간이 확보되지 않은 어려움이 가장 크지만 교사의 독서력 문제도 있다. 책을 읽지도 않는 교원이나 교육지원청 관계자들이 독서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쓰는 독후감이 천편일률적으로 줄거리 중심이며, 끝 부분 두세 줄에 교훈적인 말을 쓰는 것은 독서의 방법과 글쓰기 지도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연간 300권을 읽은 학생에게 독서왕상을 주는 학교도 있었다. 독서교육연구학교 운영을 위해 이를 계획했던 학교는 심층적인 독서방법에 대한 고심이 없었고 이런 방식의 독서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다독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확인도 없이 임의로 작성한 리스트만으로 독서왕상을 주는 것이다. 학생들의 일과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현실적인 시간을 살피지도 않는다. <엉클 톰스 캐빈>과 ‘깔깔 대소동’은 독서에 소요되는 시간도 다르고 생각할 거리도 다르므로 100권 이상, 혹은 300권 읽기 권장 등, 다독중심의 독서교육은 비현실적이고 일방적이다. 네덜란드가 한 학기에 읽어야 할 책의 수를 ‘10권’이라고 규정한 것과 대조가 된다. 어떤 학부모는 ‘다독상이 상이냐’고 물으면서 자기 아이가 책도 읽지 않는데 학교에서 다독상을 받아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교육청은 독서교육을 강조하면서 ‘필수 독서시간 확보와 학교운영예산 중 4%, 혹은 6%를 도서구입비로 예산편성 하라’고 지시했다. 학교는 이에 맞추어 갖은 재주를 부려 교과시간 외의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 독서교육을 하려다 보니 ‘다독상’이 생기고 ‘빛 좋은 개살구’ 식의 독서교육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교육청은 독서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한 번도 타진하지 않았으며 교육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일방적인 행정으로 교과 외 교육의 시간편성을 요구한다. 백설공주가 무력하고 의존적인 인물이 된 것에 대한 배경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과, 백설공주는 착하고 예쁘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능동적인 독서와 수동적인 독서의 차이를 말한다. 학생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상상력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이 교육과정의 시스템이다. 그냥 많이 읽기만 하는 것은 ‘교육’을 내세울 수 있는 독서는 아니다. 문학동호회 회원이라는 사람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람 이름이냐고 묻고, 자칭 타칭 시인이라는 사람이 <25시>를 새벽 1시라고 말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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