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은 해다. 최근 사드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한·중·일 동북아 3국의 관계가 다시 냉랭해 지고 있다. 하지만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서복(徐福)을 매개로한 역사·문화 교류는 그 어느때 보다 활발하다. 서복은 2200여년전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아 동도(東渡)에 나선 인물이다. 그는 비록 전설 속 인물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불로초를 구하러 동도에 오른 게 아니라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한국과 일본에 전파한 평화사절이기도 했다. 주간함양은 ‘불로초, 서복의 꿈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통해 함양을 비롯한 한국과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서복에 관한 전설과 자료, 각 지자체의 서복 마케팅 등을 재조명해 불로초의 고장 함양의 명성을 더 높이고 웰빙·고령화시대에 맞춰 지역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① 불로초와 서복 그리고 그의 발자취 ② 거제와 남해의 서복 이야기③ 제주도의 서복전설과 전시관④ 중국의 서복 마케팅 1⑤ 중국의 서복 마케팅 2 ⑥ 함양군의 항노화와 서복 마케팅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1주 남짓 앞둔 가을 문턱. 국토 최남단 제주에는 여유와 풍요가 넘쳐난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영글어가는 감귤과 한라봉, 명소 마다 밀려드는 국내·외 올레꾼, 눈과 귀와 입이 즐거운 가을 축제가 줄을 잇는다. 바다는 어느새 쪽빛을 더 하고 파란 하늘은 높아만 간다. 말도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서복전설을 간직한 ‘청정 서귀포’의 가을도 농익어 가고 있다. 정방폭포의 사라진 ‘서불과지’ 서귀포시 칠십리로에는 서복전설이 살아 숨쉰다. 제주도 2대 폭포 중 하나인 정방폭포 일대는 2200년전 불로초를 구하러 온 서복이 머물렀던 곳이다. 서귀포시가 2003년부터 이 일대에 서복전시관을 짓고 공원으로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한·중·일 서복 연구자들은 두차례에 걸쳐 동도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서복이 1차 항해 때 우리나라 서해안을 거쳐 제주에 당도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복 일행이 제주도에 가장먼저 도착한 곳은 조천읍 조천리 금당포라는 곳이다. 금당포에 도착한 서복 일행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한라산(영주산)에 올랐고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내려와 머물다 중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조천(朝天)과 서귀포(西歸浦)의 지명이 서복과 관련 깊다는 사실은 서복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한다. 조천이라는 지명은 밤에 도착한 서복이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너무 아름다워 금당포 큰바위에 조천(朝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한라산에서 영지버섯, 시로미, 금광초, 옥지지 등 불로초를 구한 서복은 서귀포 앞바다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서쪽(중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서귀포’라는 지명은 ‘서복이 돌아간 포구’라고 불리다가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글자 머리부분이 큰 과두문자로 알려진 서불과지는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거북바위 석각과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우제봉 암벽의 서불과차(徐市過此)와 마찬가지로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을 담고 있다.김석익의 ‘파한록’ 서복전설 담아김형수 제주서복협회 이사장은 조천과 서귀포, 정방폭포 등 제주에 얽힌 서복전설을 이렇게 소개하고 “서복이 조천과 정방폭포에 새겼다는 문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건강과 장수의 상징이자 평화의 사절이기도한 서복정신만큼은 제주도에도 오롯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또 “조선 말 학자 김석익이 편찬한 파한록(破閑錄·1877년)에는 ‘제주 목사 백낙연(白樂淵)이 서불과지 전설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긴 밧줄을 내려 글자를 탁본했는데 글자는 12자이며 글자 획이 올챙이처럼 머리는 굵고 끝이 가는 중국의 고대문자인 과두문자(蝌蚪文字)여서 해독할 수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정방폭포의 새김글은 서귀포의 서복전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서복공원·전시관 중국풍 ‘물씬’본지 취재팀이 제주 현지 취재 중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김석익의 ‘파한록’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제주 유학(儒學)의 큰 스승으로 불리며 조선말 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였던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전’이 열리고 있었다. 취재팀이 그 곳에서 정방폭포 서복전설에 대한 기록을 담은 ‘파한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파한록을 쓴 김석익이 안병택 선생의 제자였기 때문이다.아무튼 서복전설이 깃든 정방폭포 인근에는 서복공원이 조성돼 있고 우리나라 유일의 서복전시관도 건립 운영되고 있다. 불로장생을 주제로 한 서복공원은 2200년전 평화사절로서의 서복정신을 기리고 서복문화를 전파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2003년 9월 개관한 서복전시관에는 서복상을 비롯한 진시황릉의 청동마차, 병마용(兵馬俑) 등 진시황과 서복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전시물 대부분은 중국에서 기증한 것이다. 전시관과 공원 외형 모두 중국풍이 물씬 풍긴다. 중국의 건축양식을 본뜨 마치 중국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서복전시실 출구 쪽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이 2005년 7월 22일 절강성 당서기일 당시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과 서명부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시진핑 당서기가 이곳을 다녀간 뒤 서복의 기운을 받아 주석이 되었다는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이 곳에 오면 승진한다는 의미를 담아 ‘승진대로’라고 이름 지었다. 전시관옆 서복공원 자연석에는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서복공원(徐福公園) 휘호가 새겨져 있다. 2007년 4월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한중 교류의 해’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원자바오 총리에게 이세기 한중서복친선협회장이 휘호를 부탁하자 산동성 정부에서 원자바오 총리의 휘호를 돌에 새겨 기증했다고 한다. 서복공원에는 대형 서복조각상과 부조는 물론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떠나기전 진시황에게 진언하는 모습부터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구한뒤 서귀포를 지나가기까지의 일정을 6개의 화강석에 부조(가로 100㎝, 세로 50㎝)로 연출했다. 서복전시관에는 작가의 산책길 회원 30여명이 돌아가며 전시물 해설을 맡고 있다. 조옥순 해설사는 이날 전시관을 찾은 취재진에게 서복전설을 조근조근 들려주었다. 서복전설을 이야기하는 조 여사의 목소리에서 서복정신에 대한 강한 신뢰와 자부심이 느껴진다. 조 여사도 제주서복협회 이사직을 맡고 있단다. 김형수 이사장이 이끄는 제주서복협회 사무실도 이곳에 있다. 창립 30년을 앞둔 제주서복회는 우리나라 서복연구의 선두격이다. 열다섯번의 서복관련 국제학술대회를 이미 열었고 오는 12월에는 제16회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서귀포시가 운영하는 서복전시관과 서복공원은 관광지로 지정돼 1년 내내 개방하고 있다. 연중무휴란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방문객들의 건강을 위해 쑥 연기를 발에 쬐는 훈족욕체험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관광으로 쌓인 피로를 훈족욕으로 말끔히 씻을 수 있어 방문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10월부터는 중국 전통무예 태극권을 상설운영하고 칠십리축제가 열리는 10월 1일에는 서복전시관 가족참여행사를 마련해 요가힐링체험, 전통차 및 다식체험, 불로초 심기체험 행사도 열어 서복에 관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전시관에서 정방폭포 쪽으로 가는 중간쯤에 서복불로초공원이 있다. 제주에서 자생하는 목본 및 초본 등 약용식물 50여종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청정 서귀포 무병장수와 ‘궁합’청정 서귀포는 무병장수와 궁합이 맞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별,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카노푸스(Canopus)라고 불리는 노인성은 용골자리에서 가장 밝은 항성이다. 노인성은 중국 천문학에서는 사람의 수명을 맡아보는 별이라 하여 중국인들은 이 별을 보면 오래 산다고 믿고 있다.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이별을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서귀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니 서귀포의 서복전설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겠다.올해로 23회째를 맞은 서귀포 칠십리축제는 서귀포 시민들의 대표 축제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이 축제 때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퍼포먼스가 개막식 행사의 하나로 펼쳐지곤 한다. 서복의 무병장수는 칠십리축제의 주요 테마이기도하다.김형수 이사장은 “서복이 찾으려 했던 불로초는 시로미라는 열매라고는 하나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몸에 좋은 것은 모두 불로초라고 생각한다”면서 “비타민인 풍부한 제주감귤이나 해삼 전복을 비롯해 한라산 일대에서 자생하는 100여종의 약초가 모두 불로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이들 지역특산품을 건강상품으로 산업화하고 서복전설을 스토리텔링해 관광 상품화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 한다.육체적 정신적 건강 공유를김창숙 제주테크노파크 생물종다양성연구소장은 지난 2015년 제주에서 열린 서복국제학술대회에서 “서복이 찾던 제주 불로초는 신선의 열매 암고란(시로미), 영지버섯, 황칠나무, 다시마, 톳 등이 아닐까라고 추측한다”며 제주의 불로초 생태자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형수 제주서복협회 이사장은 “진시황의 신하 서복은 방사(方士)였는데 방사는 천문·의학·신선술·점복(占卜)·상술(相術) 등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폭넓은 식견을 갖춘 인물이다”며 “불로초를 찾아 나선 곳을 점령하거나 약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그의 해박한 지식과 선진문물을 전파한 평화사절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추앙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200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고 건전한 서복정신은 제주도에도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김 이사장의 말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복정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넓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공유하길 기대한다. 강대용·정세윤·강민구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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