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풀, 풀을 베고 있다. 그제는 선산에 벌초를 했고, 어제는 감나무 밭에 풀을 베었고, 오늘은 마을 길 풀을 베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는데, 풀이 무성한 채로 조상님께 절을 할 수가 없고, 수렵채취 하듯 잡초 속에서 감을 수확할 수는 없다. 고향을 찾아오는 귀성객을 무성한 풀과 함께 맞을 수도 없다. 풀을 베야 한다. 열흘간이나 이어지는 추석연휴가 코앞인데, 연휴 기간에 항공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유명 호텔 펜션은 예약이 끝났다는데, 그게 정말인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시골 경제는 제기랄 이다. 그래도 농부들은 풀을 베어야 하고, 한가위 보름달은 황금들판에도, 과수원에도 휘영청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이 2017년까지 꼭 살아야하는 이유가 이번 추석 황금연휴 때문이란다. 펜션을 하는 나도 내심 올 추석 특수를 기대했었다. 예약 대행을 해주는 업체에서는 한 달 전부터 추석 성수기 요금을 등록하라는 안내가 왔었다. 나는 추석이라고 특별히 요금을 더 받은 적이 없었기에 그냥 비수기 요금을 받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추석날 놀러오는 손님은 거의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되니 여름 휴가철 성수기 못지않게 예약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 마음속으론 내가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보기도 했었다. 객실 4개를 열흘간 돌리면 4 곱하기 10 곱하기 어쩌고저쩌고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해보니, 이거 잘하면 내가 추석만 지나면 부자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있으면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를 텐데 아직 단 한 개의 객실도 예약이 되지 않았으니, 나에게 추석 특수는 제기랄~ 개뿔이다.
올해는 펜션 새 단장 한다고 투자도 많이 했는데 막상 이러고 보니 본전 생각이 난다. 지난봄에는 펜션 욕실과 외부 창호 리모델링을 했었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업체를 선정해서 비용 부담을 줄인다고 했지만 일 년치 수익금이 날아갔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사흘간 펜션 외부 도색을 했다. 목조주택이라 나무에는 오일 스테인을 두 번 이상 입히고 벽체는 수성으로 깨끗하게 새 옷을 입혔다. 칠 공사 대금으로 또 수백억이 날아갔는데, 막상 기대했던 예약은 전무하니 내가 이럴려고 펜션을 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하긴 추석까지는 아직 며칠 남았고 손님은 당일 올 수도 있다. 설사 연휴 내내 아무도 오지 않는다 해도 내가 추석 특수 기대하고 한 공사는 아니다. 손님이 오면 좋고 안 오면 내가 놀러 가면 되니 꽃놀이 패인 셈인데, 괜히 방송에서 항공권이 동이 났느니 호텔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라느니 떠들어대니 심사가 뒤틀려 넋두리를 해본 거다.
사실은 나도 이번 추석 연휴 때 어디로 놀러 갈까 궁리 중이다. 배타고 하는 바다낚시를 해보고 싶은데 아내가 무섭다고 싫다한다. 열흘간의 가을 여행, 계획만 잘 세우면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좋을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를 하나하나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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