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부터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다시 일을 하게 되어 천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내와 자녀 셋은 학교와 주거문제로 함양에서 그대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새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매주 금요일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천안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함양으로, 함양에서 다시 서상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1시간 가서 서상버스터미널에서 마중 나온 가족들과 자가용을 타고 집으로 간다. 천안에서는 서상으로 가는 직통버스는 물론이고 천안에서 함양으로 바로 가는 직통 버스노선이 없기 때문에 매 주 1시간30분을 차를 더 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노선이 없을 것이기에 불만도 없고 이해는 간다. 그런데 매주 버스를 타고 왕래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버스 안에서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히터와 씨름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자가용 같으면 자기한테 맞게 온도를 조정하면 되지만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공용버스이다 보니 선뜻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일 년 정도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해보니 가장 하기 싫은 귀찮은 일이 밥을 먹고 난 후에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다. 가족들과 같이 지낼 때 한 번씩 설거지 할 때는 잘 몰랐는데 매일 하루 세 번 설거지 하는 것이 직장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꽤나 번거로웠다. 그래서 어떨 때는 저녁에 한꺼번에 하려고 모아두었다가 해 보니 더 힘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이웃마을에 혼자 사시는 97세 된 교회 장로님 생각이 났다. 이제 오십 된 내가 이렇게 귀찮은데 그 분은 어떻겠는가?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몇 달 전부터 금요일 날 밤에 집에 내려가면, 이튿날 토요일 아침에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모셔다 드렸는데 몇 주 전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매 끼니마다 모시고 와서 같이 식사를 한다.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모시러 갈 때마다 힘들게 뭐 하러 오냐며 만류하시지만 일 주 일에 이틀만이라도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게 하려고 꼬박꼬박 모시러간다. 지난 8월에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학을 마칠 무렵이었다. 아이들이 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빠가 있는 천안에 한 번 오고 싶어 해서 가족이 함께 주말을 천안에서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혼자 계시는 장로님이 마음에 걸려서 같이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밤에 천안에 도착해서 씻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장로님께 안쪽에 있는 조용한 방에 이부자리를 준비해 드리고 주무시라고 했는데 그 분이 거실에서 다 같이 자자고 해서 모두가 같이 거실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육체적 불편함이 아니라 고독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배려는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방을 헤아리는 것이라는 것을! 다음 날 우리는 다 같이 독립기념관을 견학하러 갔다. 연세가 일백세가 다 되어 가시는 장로님은 아직도 정정하시다. 먹는 것도 무엇이든지 잘 드시고 병치레도 좀처럼 하지 않는데 단지 한 가지 오래 걷지를 못하신다. 독립기념관은 제1관부터 7관까지 다 돌아보려면 하루 종일 걸어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래도 기꺼이 모시고 간 것은 독립기념관 입구에 연로하신 분이나 장애우 들을 위해 휠체어를 제공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휠체어가 많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그 일에 봉사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빌려 장로님을 거기에 앉히자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휠체어는 오늘 종일 자기가 밀고 다니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리고 그 말대로 관람을 다 마칠 때까지 그렇게 했는데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장로님께서도 옛날에 독립기념관에 왔을 때는 밖에서 한번 쳐다보고 갔는데 내부가 이렇게 잘 꾸며 있을 줄을 몰랐다고 하면서 너무나 좋아하셨다. 지난 주 주일 오후에 상림에서 열리고 있는 물레방아 축제에 갔다. 이번에도 장로님을 모시고 갔다. 걷기가 힘에 부치는 장로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돌 위에 앉아 있었다. 함양 농산물 전시회장을 둘러보는 것도 힘에 겨워 하셨다. 주위를 둘러 봐도 휠체어를 제공하는 곳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작금의 우리 함양과 같은 농촌은 초 고령화 사회로 급속하게 접어들었다. 그리고 우리 함양은 예로부터 충효의 고장이라고 은근히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함양의 대표적인 축제인 물레방아 축제에 여러 가지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해마다 시설적인 면이나 다른 여러 방면으로 많이 준비하고 발전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런 기분에 젖어 있는 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평상시에 늘 거동을 못해 집에서 혼자 계시는 노인 분들이나 장애 우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행사장 입구에 90세 이상 어르신들 제공할 휠체어를 마련해 놓았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과한 요구일까? 어느 함양 군내 농협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 때론 우리 사는 세상에 “일인을 위한 만인의 배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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