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청년 세 명이 우리나라의 DMZ(Demiltarized Zone.비무장지대)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다.(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외국인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을 관찰하는 이 프로그램의 독일청년들은 앞서 방영된 다른 나라 청년들과 시작부터 달랐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행동하고, 시간관념이 확고했으며, 이동 중에도 한글의 구조를 분석하고 시종일관 지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낯선 문제에 부딪치면 정확한 정보에 의해 처리했다. 첫 방문지가 DMZ와 서대문형무소라는 것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독일인들의 교육을 들여다보면 능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파주의 출판도시나 해이리에 가면서도 DMZ에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도로변의 철조망과 초소들, 임진각의 이정표를 볼 때 잊고 있었던 불행한 역사가 환기되는 심리적 불편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은 6.25 전쟁의 깊은 상흔을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통해서 대면하게 된다. 20대 초반에 읽었던 강신재의 「임진강의 민들레」와 최인훈의 「광장」은 전쟁과 이념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와 소설은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이면의 역사를 보여준다. 결국 문학이나 미디어에 의존하여 단락으로 나누어 역사를 보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반공으로 배우고 가르쳤으며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을 뉴스를 통해 피상적으로 경험했다. 138일 동안의 이산가족 상봉 역시 방송화면으로 지켜보면서 민족상잔의 비극을 인지했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 직접 눈으로 본다거나 관련자료를 스스로 찾아 비교분석하는 과정은 생략된, 개인이 미디어에 의존하는 일방적인 방식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강력하고 지속적인 교육은 방송화면과 전파를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그나마 일정연령 이상의 세대들의 이야기다. 독일청년들은 한국의 분단과 독일의 분단을 비교하고, 도라전망대에서 가이드가 가리키는 북한의 개성이 ‘달의 뒷면처럼 미지의 세계’ 라며 한국의 분단현실을 실감했다. 땅굴체험도 하면서 끝나지않은 민족 간의 대치상황을 느낀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일본의 무반응과 사과없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역사의 왜곡과 배제는 젊은 세대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독일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하고 메르켈 총리는 항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청년들도 여전히 ‘청산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과는 다른 성숙한 태도다. 몇 년 전 독일의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갔을 때 관계자는 “독일학생들이 불행한 역사를 잊지않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한다”고 했다. 초등학생들도 홀로코스트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조사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함으로써 살아있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수업은 수동적이며 단편적이다. 교실 밖으로 나가서 역사의 현장을 탐구하거나 조사·발표하는 일 없이 교과서의 내용을 간단한 설명으로 배울 뿐이다. 단원편성과 수업시수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학교사회의 역사의식도 깊지 않다. 다만 학생 개인에 따라 과제해결을 위한 독서를 통해서, 혹은 언론을 통해서 간접적인 학습을 하거나 학부모와 함께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인식의 폭을 넓히기도 할 것이다. 체험학습의 테마에도 ‘역사’는 없었다. 놀이동산이나 스키장에 가는 것을 체험학습이라 명명하거나, 어쩌다 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등의 현장체험도 꼼꼼한 계획이나 후속지도 없이 ‘가보기만 하는’ 수박 겉핥기식이라 아쉬움이 크다. 북한이 핵보유를 과시하는 도발적인 행동과 강대국의 패권주의 틈새에서 갈팡질팡하는 한국의 현실을 두고 국익을 위한 토론과 대안모색, 혹은 해결책 강구에 대한 학생차원의 교육은 여전히 없을 것이라고 본다. 독일청년들은 한국의 분단현실과 일제 강점기의 저항정신의 현장을 보고 난 다음 날, 경주로 가서 고대의 역사문화를 접한다. 우리가 소홀하게 지나쳐버리는 것에도 경이로운 눈빛을 보내고 찬란한 문화유산에 연신 감탄한다. 문득 레밍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충청도의 지방의원과 지자체단체장으로부터 현행법을 위반한 찬조금(?)과 국민의 세금으로 외유에 오른 기초의원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역사와 문화를 배우거나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를 위한 일을 했을 것이라는 믿음은 없다. 만31세의 직장인들인 독일청년들의 역사의식은 얕은 우리들의 역사인식을 새삼 돌아보게 했다. 왠지 자꾸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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