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자주 가지 않아도 주간함양을 통해 고향 소식을 잘 접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재경 함양읍향우회를 이끌고 있는 한남식 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남식 회장을 만난 곳은 강원도 원주시 그중에서도 최근 개발을 통해 높은 빌딩 숲이 생겨난 중심부에 자리 잡은 그의 일터 금남종합건설(주)이 자리 잡은 곳이다. 사무실 복도 입구부터 한남식 회장이 그동안 이룬 업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동안 그가 쌓아 올린 고층 건물들이 한 가득 복도를 장식했다. 금남종합건설(주)은 건설과 건축, 토목사업 등을 통해 원주시의 모습을 최첨단 도시로 변모시키고 있다. 먼 타지 그것도 함양에서 가장 멀 것 같은 원주시에서 함양인의 기상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한남식 재경함양읍향우회장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항상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재경 함양읍향우회장 한남식“항상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입니다.”지난 2015년 11월29일 재경 함양읍향우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취임한 한남식 회장. 취임식 자리에는 재경향우회 회장을 비롯한 원로 향우들을 비롯해 함양읍향우회 회원, 함양에서도 수많은 지역 인사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었다. 함양군에서도 함양읍이 중심이며, 이곳 재경 향우회에서도 함양읍향우회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3년차 향우회장을 맡으면서 함양읍 향우들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는 한남식 회장. 한 회장은 “함양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로 고향 함양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고향을 생각할 때는 항상 설레는 마음이 있어야만 외롭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라며 고향 함양에 대한 애틋한 정을 이야기했다.한남식 회장은 읍 향우회의 구심점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읍 향우회가 활성화되고 원로 향우부터 젊은 향우들까지 많은 이들이 참여해 고향의 정을 나누고 있다.마음은 언제나 고향 함양“어려웠던 시절 마음속 힘이 되어 준 곳이 고향 함양입니다”함양읍 백연리 돌북(상백마을)에서 2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한남식 재경함양읍향우회장. 함양중학교 28회 졸업생으로 유년시절을 함양에서 보냈다. “그때는 모두가 그렇지만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졸업 후 가족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대구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올해로 환갑을 맞는 한남식 회장. 20대의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만 40년이다. 한 회장은 “함양 사람들이 부모 유산을 받아 편하게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객지 타향에서 모두가 고생들을 많이 하셨다.”라며 타향살이를 소회했다. 서울에서 생활은 힘들었지만 함양인의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근면한 생활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서울 삼성 ‘카파시계’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건설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91년부터 자립해 지금의 금남종합개발(주)에 이르고 있다. 금남종합건설이라는 제호로 사업을 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금남(昑南)의 ‘밝을 금’에 남녘 남‘자로 항상 밝게 살아가자는 그의 생활신조가 그대로 나타난다.가능성을 내다본 과감한 투자“함양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한남식 회장은 강원도 원주시에서의 큰 그림을 그렸다. 2002년 한 회장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을 당시 원주시의 인구가 26만 가량인 중소 규모의 도시로 발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후에는 과감하면서도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졌다. 그렇게 원주 신도시 건설의 선두주자로 첫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를 끌어들이는 등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한 회장은 “원주는 서울이 가깝고 군부대인 육군 제1군수지원사령부, 7개의 대학 등 장래성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동시에 유치되는 등 원주에 건설 붐이 일면서 한 회장에게도 더욱 큰 호기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인한 수혜로 고속도로가 생기고 ktx가 지나가는 등 한 회장에게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까지 찾아왔다.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대부분의 사업체가 원주시에 집중되어 강원도 내에서 세금 랭킹 5위 안에 들어가기도 했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이 마련됐다. 현재 원주시에서만 직원이 80명 정도의 중견 기업을 넘어섰다. 한 회장은 “원주도 지역의 텃세가 상당히 강한 곳이다. 함양이라는 고향이 있어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 왔다”라며 함양인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물론 그에게도 힘든 시기는 있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가 사업의 고비로 잘 나가던 회사가 부도나고 1년여 간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함양인의 뚝심일까. 심기일전한 그는 재기를 위해 다각도로 준비하다 사업장을 안산에서 원주로 옮겼다. 이것이 대박이었다. 그는 “당시 안산에서 사업을 했는데, 원주로 옮긴 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를 비롯한 향우 대부분이 실패와 좌절 등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했다. 한 회장은 “그 시절은 모두가 어려웠다. 자전거 타고 배달하던 선배들은 이제 모두 잘 되지 않았나. 성공했다지만 그 과정은 모두 힘들었다”라고 선배 향우들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직접 만든 건물들은 원주 사람이라면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한 곳들이다. 또한 그는 원주에서 호텔, 예식장, 버거킹, 롯데시네마, 롯데리아 등을 직접 운영하는 자랑스러운 향우다. 그가 쌓아올린 건물들은 법조타워, 정한프라자, 정한타워, 호텔 비즈인, 로얄타워, 한신프라자, 센터프라자, 신세계프라자, 스타프라자, 대신프라자, 스타월드, 한솔프라자 등 원주시의 랜드마크라 할 정도다. 어디가도 볼 수 없는 함양 향우의 정“고향 함양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향우회입니다”읍 향우회장을 맡으며 향우회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우렸다. 원로 향우들과 젊은 향우들이 모여 향우회 발전을 논의했다. 먼 타지 서울생활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만나지만 그는 언제나 함양의 지인들이 우선이다. 한 회장은 “서울에서 거진 함양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같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주변에서도 한남식 회장이 칭찬이 자자하다. 한동안 침체되어온 읍 향우회를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읍 향우회는 직전 노명환 회장을 비롯해 이어 받은 한남식 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향우회가 침체에서 벗어나 활성화되었다. 한 회장은 “가급적이면 행사를 줄이고 고향 함양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고향의 정을 나눌 것이다”라며 앞으로 읍 향우회의 발전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의 원로 향우분들이 돌아가시고, 젊은 향우들의 수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읍 향우회 역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그는 “읍면의 향우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는 군 향우회로 통합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라며 가까운 미래 향우회의 변화를 조금씩 준비 중이다. 고향 사람만 만나도 즐거움 가득“아직도 거리에서 함양 차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한남식 회장은 고향 함양에 자주 들린다. 지난 9월 초 친구들과 함께 용추계곡을 찾기도 했다. 항상 고향 함양을 생각하며 고향 친우들과 우애를 나눈다. 한 회장은 “함양에 가면 순대국에 막걸리 한잔하는 것, 정말 좋다”라며 “고향에는 아직도 좋은 친구, 훌륭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고향인 것 같다”라고 고향 사랑을 노래했다. 고향을 찾으면 그리운 친구들, 선후배들과 자주 만나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옛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모를 정도다. 타향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지만 여전히 고향 함양은 그에게 가슴속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한 회장은 “서울에서 함양 사람을 만나면 끝이 없다. 너무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는 은퇴 이후 함양에서의 생활도 염두하고 있다. 특히 그가 계획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는 함양을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함양에 작은 영화관을 만들고, 컨벤션 센터, 키즈 어드벤츠 등 함양에 꼭 필요한 복합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최경인 대표이사·최원석 서울지사장강대용·정세윤·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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