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엉터리 농사꾼이란다. 20년 넘게 학생들과 텃밭 농사를 지었다는 그의 필봉산 텃밭에는 수십 종의 작물이 자라지만 늘 농작물보다 풀이 무성하고, 약을 치지 않은 감나무는 가을에 따 먹을 열매가 없다. 친환경 인증까지 받은 백전오미자 밭에는 내다 팔 수 없는 오미자만 주렁주렁 불쌍하게 달려 있다. 우렁이와 미꾸라지로 재배하는 백암산 옆 다섯 마지기 논은 온갖 벌레들의 천국이지만 셋이 어울려 짓는 농사라서 그나마 봐줄만 하다. 이렇게 엉터리로 농사를 짓는 이는 함양초등학교 2학년 3반 담임인 박석병 교사다. 그는 교실보다는 밖에서 가르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함양초 느티나무 아래나 학교 숲에서 무언가 뒤적거리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면 틀림없이 그와 함께하는 그의 반 아이들이다. 그가 하는 수업은 온통 놀이다. 책을 읽으면 읽은 내용을 바로 연극으로 표현하고, 셈을 배우면 운동장에 숫자 칸을 질러 콩콩 뛰어다닌다. “어저께는 ‘산청 목도 소리’ 노래를 배웠는데, 아이들이 목도가 뭔지도 모르는데 무슨 흥이 나겠습니까? 통나무를 구해 와서 목도를 메고 놀면서 노래를 불러야 맛이 나죠.” 그의 교실에는 집 짓는 데서나 볼법한 통나무도 있다. 그에게는 온갖 자연이 모두 교실이다. 어느 날에는 군청에 취재하러 가는 길에 학교 나무 사이에 노끈이 얼기설기 걸린 걸 보았다. 노끈을 거미줄처럼 걸어 놓고 조심조심 빠져 나가는 놀이는 여름 곤충 놀이란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뭐 책 보고 가르칠 것 있나요? 교과서에 여름 곤충이 나오면 바로 뜰로 나와 벌레 한 마리라도 살아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게 재밌죠?” 그래서 그는 물에 사는 생물을 가르치기 위해 ‘생태 둠벙 논’도 만들어 아이들을 데려간다. 백암산 기슭에 논 한 다락을 빌려 직접 모내기를 하고, 우렁이를 넣었다. 논 뒤쪽에 기다랗게 둘러싼 둠벙에 물을 가두고 가을에 미꾸라지 잡이 체험하려고 어린 미꾸라지도 사 넣었다. “물을 잡고 모를 낸 논에는 풍년새우와 물장군 등 흔히 볼 수 없는 생명들이 그야말로 ‘버글버글’ 한 겁니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난리가 나죠.” 아이들이 어린 벼를 막 밟아놔도 그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한 번도 농사를 제대로 지어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엉터리 농부이기 때문이란다. 지리산 깊은 산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교사가 되어서도 가는 학교마다 텃밭을 일구었다. 지금도 학교 뒤 필봉산에 텃밭을 만들어 수십 가지 농작물을 심어 놓고 해마다 아이들을 불러들인다. “창원시내 한복판 제일 큰 학교 두 곳에서 근무했을 때도, 없는 텃밭을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나를 길러준 시골과 농사의 감성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주고 싶었거든요.” 그는 요즘 토종 종자를 지키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토종을 지키고 그 가치를 가장 알려 나갈 수 있는 곳이 학교 텃밭이라고 생각해서다. “토종은 돈이 안 되니까 농민이 지키긴 어렵죠. 학교 텃밭은 돈이 목적이 아니니까” 그는 아이들과 토종 종자를 심고 가꾸는 텃밭활동을 통해 최소한 토종과 GMO 농작물은 구별할 수 있는 현명한 농업 소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는 농협 조합원이고, 농민회 회원이며, 산양삼과 오미자 작목반 활동도 한다. 농민회원과 함께 공동으로 참깨도 털고, 예취기 교육도 하고, 토종종자 나눔도 하였다. 이번 백전오미자축제에서는 중기마을 어르신들을 도와 오미자를 팔고, 족욕과 오미자 따기 체험을 운영했다. “지금은 본업이 있어서 농사를 제대로 못하지만, 언젠간 돌아갈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텃밭 한켠에 작은 컨테이너를 마련해 생활가구를 만들고 학생들과 목공작업도 한다. 해마다 어린이 연극제를 할 때면 무대를 만들어 주는데, 이번 산삼축제 연극 공연에 쓰인 무대도 그의 손으로 만들었다. 상림에서 매년 여는 어린이날 행사 주관모임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놀이기구를 만들고 설치하는 일은 언제나 직접 한다. 그의 다음 꿈은 꼼지락 재주와 목공 취미를 살려서 ‘무엇이든 도와드리는 작업실’ 공간을 만들고, 시골의 어르신들께 자잘한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 도움 받으면 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만 봉사하는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자신의 삶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교육, 그것이 진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파이팅을 기대해본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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