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 운동’을 당시 우리는 ‘5.18’이라고 불렀다. 통신망을 차단하여 언론방송에 한 줄의 기사도 나오지 않았으나 유언비어(?)는 시공간을 막론하고 떠돌아 다녀 긴가민가 하면서도 소름이 쫙 돋던 것이 기억난다. 5.18의 진상을 최초로 읽은 것은 어느 시사월간지에서 외신기자의 보도를 번역한 원고 200매 분량의 긴 글이었다. 80년대 중·후반이었는지 90년대 초반이었는지 기억은 불확실하다. 지금은 SF영화나 범죄소설 등 공포감이 내재된 것은 장르가 무엇이든 기피하지만 그때는 게오르규의 「25시」도 참담한 마음으로 읽었고 2차대전 때 징용으로 끌려간 일본인 고미카와 준페이가 일본군의 만행과 잔학성을 쓴 「인간조건」도 단숨에 읽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콰이강의 다리’도 냉철한 시선으로 관람하면서 메시지가 강한 영화를 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5.18’은 메시지가 강한 영화도 아니고 인간의 삶을 유린하는 소설도 아니었다. 경남과 그다지 멀지않은 도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에게 일어난 잔학한 실화였다. 어떤 대학생은 ‘쑥고개’라는 시집으로 당시의 실상을 손에서 손으로 알렸다. 위성초등학교에 근무하던 광주 출신 보건교사가 그 시집을 교사들에게 보여주었으나 아무도 ‘5.18’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교직은 정치에 대해 개입하는 것을 불온하게 생각했으며 법은 ‘정치적 중립’을 규정했다. 특히 초등학교는 이 법규에 충실하게 순응했다. 몇몇 성당에서는 사진전을 펼치면서 광주의 잔학했던 실상을 조용하게 알렸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에게 5.18의 실상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5.18의 작전명을 제목으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몇 년 전에 상영되고 최근 ‘택시운전사’가 상영되면서 5.18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예전에 월간지에서 읽었던 외신보도의 그 글이 택시운전사에 등장하는 독일기자 힌츠페터의 글이었나? 이제와서 어렴풋한 기억을 소환해 보지만 불확실한 일이다. 언론의 통제를 최초로 직면했던 것은 74년 동아일보의 광고탄압이었다. 교대를 졸업하고 언제 발령이 날지 알 수 없는 미발령대기자로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낼 때였다. 동아일보를 구독하면서 아침을 시작하던 당시 신문의 광고난은 연일 하얗게 비어있었다. 비어있는 몇 개의 칸에 시민들의 격려문구가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저 위(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거창이나 함양같은 변방은 치열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이었고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상태였던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 누구하고도 동아일보 광고탄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88년 MBC는 노조파업으로 저항했고 손석희는 투옥되었다. 공정방송이 요구조건이었다. 2002년에 이어 지금도 MBC와 KBS의 노조는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변방의 우리는 언론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진실은 왜곡되어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의 파업으로 인식한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세상을 읽고 인간과 사회의 복잡성을 깨닫는다. 언론이 공정한 보도를 해주지 않으면 우리들의 시선도 왜곡된다. 86.5.17 동아일보에 쓴 김중배의 칼럼, ‘아, 잔인한 5월’은 엘리어트의 표현을 빌어 “5월은 잔인한 계절이다”로 첫문장을 시작했다. 그 잔인한 5월이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의 영상으로 다시 재현되고 있으나 나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지 않았다. 잔인한 장면과 대면하고싶지 않은 공포감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연약해진 것인지, 평화롭고 일상적인 잔잔한 이야기만을 갈구하는 것인지, 인간사회의 혼란에 지친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작가는 정상적인 스토리는 임팩트가 없어 작품성이 낮다고 하지만 나는 임팩트도 저항도 필요없는 평온한 사회가 유지되길 바란다. 그러나 북한 핵보유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그럴 일은 없다’는 듯 연일 보고싶지 않은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축제의 과도함이 주는 피로감은 아랑곳 없다는 듯 10일 간의 긴 일정으로 함양산삼축제가 한창이다. 먹거리 시장과 대중가요 공연이 주안점인지, 산삼이 주안점인지 헛갈리게 하면서 문화예술회관에서 ‘택시운전사’가 방영되는 것도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하는 듯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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