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의도로 가식적 행동을 하게 됩니다. 또는 자신들의 가정의 실체를 감추기 위해서 가식적이 됩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다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부모임에 참석해서 남편이 “제 아내는요, 성질이 못됐어요.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건 사람을 들들 볶아서라도 꼭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예요.”라고 말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아내가 “제 남편은요, 귀가 안 들리나 봐요. 제가 쓰레기를 좀 버려달라고 5,6번을 말해야 겨우 들어줄까 말까 해요.” 라면서 역시 얼굴에 웃음을 머금지요. 두 부부의 말을 들은 참석자들은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순간 고민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든지 상관없이 부부의 가식적인 행동을 통해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나 그들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냉전이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갈등과 고통은 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어쩔 수없이 가식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 할수 있겠지만 결코 합리화 시키거나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가식적 행동은 위장이요 속임수입니다. 또한 죄악으로 치닫게 하는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유혹의 종말은 패망입니다. 그래서 가식적 행동은 우리에게 독이며 절대 삼가야 할 요소입니다. 순간의 위기 모면이나 체면유지, 원만한 관계유지를 위한 가식적 행동은 순간은 지나가지만 결국에는 파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순수함이나 신실함이 지금은 손해보고 유익이 없는 것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가식적인 행동이 불신풍조를 유발하고 불신의 세상을 조장하는 주범이 아닐까요? 심지어 신앙인들까지도 진실하지 못하고 가증스러운 행동을 아무 의식도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농담과 미소로 마음의 고통을 위장해 왔고 삶의 문제를 포장해 왔습니다. 이제라도 그런 가식적인 모습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파멸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정직함으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 가변과 위장막을 벗을 때 서로 존중하게 되고 신뢰하며 원만한 관계가 깨어지지 않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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