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한오정은 낙성 5년만에 홍수에 떠내려가 버렸다. 청기와를 얹은 3칸짜리 당당한 한오정 낙성을 계기로 한오대 계는 반석에 올라섰는데 홍수로 떠내려가는 변고를 당한 것이다. 정자의 명운이 한오대 계의 상징 인물인 한남군처럼 단명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엄천강에서 가장 멋진 정자였을 한오정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한오정에서 어느 선비가 지었다는 시도 없고 한오정의 멋스런 정취를 노래한 시도 없다. 한오정은 제대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엄천골 사람들의 가슴에 묻힌 것이다.
병자년 대홍수 때 떠내려간 한오정은 정확히 어디쯤 있었을까? 한오대 계안에는 “한오대의 오른쪽 땅에 정자를 세웠다(其右地建亭)”라고만 되어있다. 오른쪽 땅이라? 오른쪽 땅이면 오서(새우섬)일텐데 왜 오서라고 하지 않고 오른쪽 땅이라고 했을까? 혹 새우섬에 세운 게 아니고 한오대 오른쪽 언덕 어느메쯤 세운 것은 아닐까? 거대한 물살이 세칸 정자는 물론이고 주춧돌마저 쓸어 아무 흔적이 없는 터에 근래 중장비를 동원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해 땅 모양마저 바꿔버려 옛날에 실제로 본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다행히 수소문 끝에 정자를 직접 보고 기억하는 사람을 찾았다. 한남마을에 사시는 91세 임차분 할머니께서 “한오정 정자는 새우섬 문정머리 쪽에 있었지~”하고 어릴 때 보았던 기억을 구체적으로 증언해주셔서 정자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해도 되게 되었다. 문정머리 쪽이면 엄천강 12경중 화산제5곡인 양화대를 조망하는 최적의 위치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원하는 것이다. 새우섬 문정머리에 3칸짜리 청기와를 얹은 한오정을 복원하는 것이다. 한오정 복원은 단순히 옛날 정자 하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한오정은 휴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한오대계’를 중심으로 뭉친 요샛말로 센터였기에 정자가 복원되면 다시한번 휴천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에 엄천강의 들머리 용유담에서 꼬리인 함허정까지 화산12곡이 새롭게 알려져 각광을 받고 있다. 엄천골 주민들은 화산12곡을 걸어서 답사할 수 있는 엄천강 트레킹 길을 조성하고자 노력중이고, 방송에서도 화산12곡을 새로운 볼거리로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다.
1931년 한오정 낙성 당시 쓴 허경오의 한오정기를 이재구 선생의 국역으로 일부 소개한다. “나라가 망한 지 21년(1931), 그 오른쪽 땅에 정자를 세웠는데 네 기둥에 세 칸짜리였고 청기와로 지붕을 덮었으며 흙 계단과 소나무 침상은 맑고 깨끗하여 법도가 있고 산천은 더욱 빛나고 풍경은 볼만하였다. 저기 뛰는 것은 아름다운 물고기이고 헤엄치는 것은 오리로다. 저들도 기뻐하지 않음이 없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지금 천지가 막다른 곳에 이르러 삼강(三綱)이 끊어지고 구법(九法 *홍범9조)이 무너졌다. 이에 순박한 사람과 단정한 선비는 깊은 근심을 그치지 못한다. 간절히 바라건대, 동지와 여러 군자들은 음풍농월하는 장소로 여기지 말고 진심으로 도(道)를 향해 나아갈 것을 으뜸으로 생각한다면 극히 다행한 일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한때의 놀고 구경하는 장소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간절히 바라건대, 함양군에서는 한오정을 단순히 음풍농월하는 일개 정자로 여기지 않고, 아름다운 엄천강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고 지역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하여 복원을 추진한다면 극히 다행한 일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한때의 이야기 꺼리를 제공한 장소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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