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의 딜레마는 실천과정에서 왜곡과 전도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데 있다. 70년대 중,후반 학교마다 육중한 슬로건으로 걸려있던 ‘학력 향상의 해’의 취지가 왜곡되는 것을 첫발령을 받던 해부터 경험했다. ‘토론문화 형성’은 90년대의 슬로건이었으나 교육청 관계자들이나 학교의 관리자들은 교사들과의 ‘토론’을 용인하지 않았으며 토론에 능하지도 않았다. ‘정의사회 구현’도 한 줄의 슬로건으로 지나갔다. 지금도 진행 중인 ‘학교 컨설팅’은 의무적 시행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내용도 형식도 왜곡된 상태로 시작되었다. 최근 교대생 임용절벽의 방안으로 대두된 ‘1수업2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공감하는 것은 이와같은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수업2교사제’는 개요만 봐도 혼란스럽다. ‘기초학력이 부진한 지역과 학교에, 담임과 교과교사의 건의에 의하여 학교장이 판단한 수업’이라고 대상을 규정한 것과, 성격이 서로 다른 ‘정교사(학습지원전문교사), 기간제교사, 시간강사, 임용대기자, 예비교사’를 보조교사로 선정하고 부여한 역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다. 2년 전 초등학교는 중간·기말고사 등 객관식 평가를 없애고 서술평가방식으로 전환했다. 올해는 중학교까지 확대하고 전수조사도 안한다는 마당에 기초학력 부진 지역이나 학교는 어떻게 선정할지 의아하다. 또 보조교사 배치 ‘건의’는 자율을 의미하는지 권장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를 잠재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떤 것이 되든 문제의 소지가 있다. 두 번 째는 보조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수업시수의 문제와 근무시간의 문제다. 정교사를 제외한 여타 보조교사는 학교장이 채용하므로 시간계약을 명시하는 형태가 되는데 무기계약을 피하기 위해 시간쪼개기를 한다면 상시적 지속적인 학생지도는 어렵다고 본다. 보조교사 배치 방식도 의문이다. 수업을 보조교사에게 맡기고 주교사는 다른 일을 하거나, 수업나누기의 편법이나 트릭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는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했던 문화예술강사는 담임교사의 수업보조로 활동하는 ‘1수업2교사’ 체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담임교사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강사 혼자 수업을 했다. 두 사람의 사전 수업협의가 없을 뿐더러 수업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조차 인식하지 않는 가운데 강사에게 수업을 일임한다. 강사는 교과교육과정과 무관한 자신의 전공이나 특기로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방과후프로그램이 아닌 교과수업에서 이는 편법이고 트릭이다. 또 한국대학신문(2017.4.24.)은 A대학에서 팀 티칭으로 개설된 15주 수업을 8주는 A교수가 7주는 B교수가 나누어서 진행한 사례를 ‘허울뿐인 팀 티칭, 학생들은 어리둥절’ 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정책적 취지가 현장에서 어떻게 왜곡되는 가를 보여준다. 초등교사 임용절벽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1수업2교사제’는 이런 사례들을 생각할 때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규모학교에 배정되는 원어민 영어강사도 보조교사다. 영어전담교사와 원어민 영어강사의 공개수업은 취지를 살려 진행된다. 수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원어민교사와 전담교사의 협의를 거칠 뿐 아니라 필요한 학습자료를 제작하고 몇 차례의 사전점검 후 팀 티칭의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주교사와 보조교사의 역할을 뚜렷하게 나누어 개별화 지도를 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1수업2교사’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한 교과를 전담하는 교사가 아닌, 여러교과를 지도하는 담임교사가 공개되지 않는 일반수업을 공개수업처럼 준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중등과 달리 초등은 매일, 매시간 다른 교과를, 내용과 목표가 다른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명의 교사가 한 시간의 협력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수업계획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하고 개별차가 나는 학생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게다가 체험학습 준비에, 공문이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교육과정 편성시 계획한 교육행사 준비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시간의 공개수업 준비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매일 매 시간의 2교사 협력수업 준비는 녹록하지 않다. 주교사가 아닌 보조교사가 평가관찰지를 만들고 과정평가를 한다는 방안 자체도 모순이다. 교육정책을 제시하는 쪽에서는 항상 ‘기대하는 효과’라는 이름으로 밝은 청사진을 그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반짝했다가 예산만 낭비하고 사라진 교육이 얼마나 많은가. ‘열린교육’과 ‘책가방 없는 날’ ‘이동수업’이 그랬다. 서울시의 고교자유학년제로 시행한 오디세이 학교를 토대로 삼고 출범할 ‘각종학교’를 바라보는 마음도 아슬아슬하다. 인구감소로 인한 임용절벽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앞으로 취학인구는 더욱 줄어든다. 좀더 긴 안목으로 임시방편이 아닌 모두가 공감하는 교육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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