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기차안이 소설책이고, 버스지붕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그 책을 나는 읽었다.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에서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앞둔 아들과 6학년이 되는 딸을 위해서 새로운 여행지를 고르고 있던 나에게 류시화 시인의 글이 마음을 움직였다. 세상이 곧 책이라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여행 버킷리스트라 제목하고 열 개의 여행거리를 적었다.여름방학 버킷리스트● 장흥 물축제 즐기러 가기 ● 워터파크 NO, 함양 용추계곡에서 물놀이 하기 YES● 기차타고 서울 가보기● k리그 축구를 경기장에서 관람하기 ● 야생화의 천국 노고단 방문하기 - 구례화엄사 ⇒ 성삼재까지는 꼭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 노고단 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먹어 보기 - 노고단 탐방에서 본 야생화 이름 불러주기 - 지리산에는 반달곰이 살고 있다는거 기억하기●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하기 ● 지식의 보물창고 박물관 방문하기● 자랑스러운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만나보기● 여름성경캠프 참가하기● 여행 후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7월23일 여름방학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설레고 떨렸다. 장흥 물축제를 시작으로 하나씩 여행 소식을 아이들에게 빵빵 터트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등 계획을 말할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너무 즐거워했다. 리스트를 적을 때 불쑥 튀어나온 계획이 노고단 탐방이었다. 결혼하기 전 온라인 카페의 산사모 회원들과 몇 번 올랐던 노고단의 환상적인 그림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우리의 버킷리스트에 등록 되었다. 순수한 우리 아이들은 함양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노고단 탐방을 필봉산 오르는 것과 동급으로 여겼다. 오전7시 함양 출발, 오전8시10분 구례 화엄사 주차장 도착(자가운전), 성삼재 가는 시내버스가 8시40분에 우리를 데리러 오기 전까지 우리는 등산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각자의 분량대로 짐을 나눴다. 버스에 오르니 이미 자리는 만석이었다. 구례 터미널에서 출발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가 구불구불 고개를 돌고 돌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감성 여행자가 되어 감탄사를 연발해 주길 바랬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서 일까? 지리산 골짜기까지 와서 포켓몬고를 찾고 아이돌 노래를 듣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나이들었음을 확인했다. 떠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아서 친절한 기사님은 우리를 성삼재 주차장에 살포시 내려주셨고, 주말이라 많은 차들이 성삼재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온 우리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함께 노고단을 향해서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끌고 들어온 내가 너무 대견하기까지 했다. 깊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냉장고 바람이 오르막을 오르는 내내 우리에게 땀방울을 허락하지 않았고 키 큰 나무들의 가지가 손을 뻗어 우리에게 그늘막을 만들어 주었다. 이건 마치 특급경호를 받고 있는 VIP와도 같은 대우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썰렁한 아재개그, 산에 관련된 어록,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즐거운 걸음을 계속 이어갔다. 조금씩 지칠 무렵이면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우리의 얼굴을 적셔주었고 이질풀, 산오이풀, 동자꽃, 원추리 등 고운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무계단을 걷고, 돌계단을 걷다보니 반가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을 했다. “엄마 이젠 다 왔지요?” 사람이 많은 대피소를 보고 아이들은 여기가 우리의 도착지라고 생각을 했나보다. “얘들아 저기 위에 송신탑 보이지 저기가 노고단 정상이야 20분 더 걸어가야 해” 대피소에서 초코파이를 먹고 당을 보충한 뒤 다시 돌계단을 올랐다. 정상을 눈앞에서 봐서인지 아이들은 훨훨 날아갔다. 나만 힘들어서 쉬어 가기를 반복할 뿐 노고단 탐방 예약 확인을 한 후 드디어 두둥~! 노고단 나무문을 밀고 살포시 발걸음을 들여 놓았다. 나무데크로 되어 있는 안락한 탐방로를 걸으면서 천지에 널린 야생화와 100년 된 구상나무를 보는 나는 감격스러웠지만 아이들이 열광하고 감격스러워 한 것은 산 밑에서 산위를 오가는 구름이었다. 구름빵을 만들 수도 있겠다며 구름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구름 속에 숨기도 하였다. 구름에 가려져 정상에서 섬진강과 산 능선들을 못 본 것은 나만 아쉬워 할뿐 순수한 아이들은 구름에 가려진 노고단을 더 좋아했다. 구름이 오고 갈 때의 그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정상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어디서 오셨어요? 물어보며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해준 노고단이 참 고마웠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노고단 탐방로를 내려왔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을 하여 “밥 지어 먹는 곳”이라는 팻말이 붙은 주방에서 아이들이 직접 라면을 끓였다. 보글보글 주홍빛 스프냄새가 이렇게도 좋을 수가! 스프에 물들여진 면발이 수제 면발처럼 찰져 보이기까지 한다. 해발 1400고지에서 먹는 라면 맛은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이들도 지금까지 먹은 라면 중 가장 맛있는 라면을 먹었다며 다음에 또 오잔다. 목적이 라면인건가!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드디어 하산준비를 한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한다. 다리가 힘이 풀렸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성삼재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원샷하고 성삼재를 뒤로하고 구례화엄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2시 짧은 시간에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보고 온 아이들이라 그런지 쌩쌩하기만 하다.아이들에게 감사하다. 좋은 추억을 함께 가질 수 있어서..... 다음에는 좀 더 자라서 지리산을 찾겠지!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김은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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