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넷째 휴일 대서, ‘폭염이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문자가 떴다. 탐구산행은 그날 아침 7시에 시작되었다. 폭염이라 야외활동을 일찍 시작한 것인데, 유두류록에 나오는 점필재 김종직의 첫날 숙박지인 고열암까지 답사를 목표로 하고 류정자 선생을 대장으로 한 탐구 산행 팀 4명이 배낭을 메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기에 산행이 오후 1시경에 끝나긴 했지만 참으로 기억에 남는 대단한 날씨였다. 5시간 흘린 땀으로 계곡이 불어날 지경이었다. 김종직은 仲秋에 천왕봉에서 보름달을 보기 위해 지리산에 올랐다고 한다. 만약 우리 답사도 한가위 쾌청한 날 이루어졌다면 유두류록의 여정처럼 옛 시도 읊조리는 여유있는 산행이 되었을 텐데, 가장 무더운 날 움직이다보니 첫걸음 떼기도 전에 땀이 줄줄 흘렀다. 정말 유감스러웠다. 유두류록에는 힘들어서 걸음을 되돌리고 싶었다는 대목이 없었고, 쉴 때마다 각종 모기가 떼거지로 반겨주었다는 말도 없었다. 유두류록의 앞부분에 “말에서 내려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오르는데, 숲과 구렁이 깊고 그윽하여 벌써 경치가 뛰어남을 깨닫게 되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우리 답사기의 앞부분은 <트럭에서 내려 땀수건을 짜며 오르는데. 날씨가 습하고 모기가 많아 그윽한 경치는 개뿔, 더운 날 답사일정을 잡은 함양문화원을 원망하며 얼른 하산해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게 간절함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써야 할 것이다. 류정자 선생이 유두류록에 나오는 지형을 찾아다닌 지가 십수년 되었다. 지리산 마고할미가 동무하자고 찾아와도 어색하지 않은 고희에 아직도 산을 오른다. 유두류록이 무슨 보물지도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내가 사는 마을 뒷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장서서 산을 오르는데 뒤따라오는 류정자 선생의 숨소리가 겨울바람처럼 거칠다. 나도 더위 때문에 힘들지만 용기를 내어 아침 이슬 흥건한 산죽을 헤치며 묵은 산길을 연다. 지팡이 하나 주워 거미줄을 걷으며 선인들의 옛길을 더듬는다. 유두류록 만큼 나이가 많은 운암골짝 돌배나무까지 내쳐 올라 숨을 고르는데, 고개를 90도로 젖혀보니 돌배가 많이 열렸다. 수령이 사오백년 된 고목이다 보니 해거리를 해서 7~8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달리는데, 마침 올해 열린 것이다. 반가웠다. 늦가을에 지게 지고 올라오면 돌배를 욕심껏 주워 내려올 수 있을 것이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 몰래 오르락 내리락 할 것이다. 다 주우면 아마 몇 트럭은 될 것이고 나는 틀림없이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환희대 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 들어가니 선열암 폐사지가 나온다. 어디에도 선열암이라고 써 놓은 데는 없지만 옛날 기록을 참조하여 선답 탐구 팀들이 선열암 폐사지로 추정한 곳이다. 과연 암자가 하나 들어설 만한 거대한 바위 요새 지형이고 기와 파편이 많이 보인다. 직벽의 거대한 바위 아래 샘이 있고 터 아래는 천길 낭떠러진데 멋모르고 둘러보다 아차 할 뻔도 했다. 유두류록에는 “선열암을 찾아가 보니, 암자가 높은 절벽을 등진 채 지어져 있는데, 두 샘이 절벽 밑에 있어 물이 매우 차가웠다. 담장 밖에는 물이 반암의 부서진 돌 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데, 반석이 이를 받아서 약간 움푹 패인 곳에 맑게 고여 있었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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