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함양과 같은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나 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다문화 가정들도 이제 우리의 이웃으로 어엿이 자리를 잡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서상은 고지대인지라 딸기 육모를 많이 재배하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베트남사람들을 비롯한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한 번은 산책을 하는데 맞은편에서 일꾼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오고 있는데 모두가 베트남 삿갓 모자를 쓰고 있어서 혼자서 빙긋이 웃은 적이 있다. 여기가 마치 TV에서 본 베트남 농촌 풍경 같다는 느낌이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시골에 사람들이 참 많았다. 거리거리마다 아이들이 쫓아다니면서 뛰노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낮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밤에도 모여서 놀이를 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어른들이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농번기가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들판에서 일을 했다. 전답주인들은 일꾼들 밥해 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뙤약볕 아래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식사시간이 되면 그 시간은 마치 잔칫집 분위기였다. 주인들은 서로 자신의 농사일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인부들은 고된 일을 한 후라 그 때 먹는 그 음식은 정말 꿀맛 같았으리라. 식사 후 잔디밭에 그대로 고된 몸을 조금 누인다. 그러면 막걸리를 드신 분 중에 한 분이 구성지게 트로트 가요를 한 곡 부르면 여기저기서 따라서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잘한다고 칭찬하며 흥을 돋우기도 하였다. 참으로 정겨운 시골 모습이었다. 40여 년 전의 시골모습이지만 지금도 시골 들판을 거니노라면 아직도 그 장면들이 눈에 선하고 그 소리들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작금의 시골 모습은 달라졌다. 변해도 아주 많이 변하였다. 아이들 소리가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모습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낮이건 밤이건 어떤 때는 마을 전체가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외국인들이 많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리고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주거시설도 그렇게 안락한 곳은 아니다. 일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자기 나라말로 대화하는데 우리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럴 때는 조금 답답하지만 그들이 훨씬 더 답답할 것이다. 몇 주 전에 우리 아이들과 주말에 인근에 있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다. 그 식당에 일하는 사람이 새로 들어 왔는데 중국인이라고 하였다. 젊은 여성이었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주인이 중국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주인이 한국말로 하나하나 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종업원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모른다고 하지는 못하니까 알아듣는 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옆에서 보기가 민망했다. 주인도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하니까 힘이 들고 짜증이 나니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해는 간다. 우리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나 어른들께서 연거푸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물으시면 화가 나서 신경질적으로 반응 하지 않았던가. 주인이 몇 번이고 “1번 룸에 7시에 예약 있으니까 준비하세요!” 라고 당부를 하지만 그 종업원의 얼굴을 보니까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한 마디 한 마디 즉석에서 지시하는 것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1시간 뒤에 있을 일을 준비하라고 하니 그걸 알아들을 리가 만무하다. 모기소리 만하게 대답은 하지만 전혀 자신이 없는 목소리였다.
우리식탁에 반찬을 놓아주러 와서 내가 그 종업원에게 알고 있는 중국어 몇 마디 중 하나로 인사하였다. “니 하오!” 하니까 얼굴에 웃음이 조금 머물렀지만 금방 사라졌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웃음도 크게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주인은 주인대로 자꾸 일 가르친다고 재촉을 하니까 정신이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오면서 애처로운 마음에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인사를 중국말로 하였다. “짜이찌 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짜이찌 엔”으로 인사하라고 시켰다. 아이들 셋이 재미있다고 그렇게 인사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그 종업원의 손이 자기 입으로 올라가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아마도 알이 듣지 못하는 한국어 때문에 종일 힘들었는데 자기 나라 말로 인사해 주는 아이들의 말에 가슴이 울컥했던 것 같다. 남자 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 중국인 젊은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는 말 들으니까 그렇게 좋아!”하면서 함께 기뻐하였다. 어느 듯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많은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 땅에 와서 여러 가지 말 못할 어려움도 많고,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떠나 온 외로움과 그리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진하고 클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유창하게 그들 나라의 언어로는 아니더라도 짧은 한 마디라도 그들에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따뜻하게 건넨다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한 그 이상의 기쁨과 용기를 가질 것입니다. “말 한 마디로 큰 기쁨”을 선사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한국에 와 있는 지구촌 이웃들! 우리 산삼의 고장 함양에 와 있는 다문화 가정들과 외국인 근로자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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