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초복에 운서마을 사람들이 엄천강 제방 둑에서 대청소를 했다.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하느라 꼭두새벽에 새벽잠을 설치며 나와, 나이 드신 분들은 낫으로, 장년층은 예초기로 강둑에서 풀을 베고 쓰레기도 주웠다. 내가 사는 운서마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이번에 방송을 탄 엄천강의 열두 명승 중 화산 제5곡 양화대, 제6곡 오서, 제9곡 사량포, 제10곡 칠리탄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강마을이다. 마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엄천강에 대한 사랑도 아름다워서 사람들은 강둑을 따라 풀을 베고 덩굴도 걷어내고 구석구석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였다. 화산제6곡 오서의 한오대에 앉아 땀을 식히며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갑장 김용대가 자기 집에 새우섬과 관련된 오래된 서적이 있다고 자랑했다. 물려받은 건데 자기는 한자에 까막눈이라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좌우지간 대단한 거라 했다. 지난 달 엠비씨 방송 ‘그레이트 지리산’ 다큐에 화산12곡이 두 번이나 방송되어 세간의 관심이 고조된 차에 관련 자료가 있다하니 귀가 솔깃했다. 쇠뿔도 담김에 빼라고 청소 끝나고 바로 달려갔다. 갑장이 장롱 속에서 보퉁이를 하나 꺼내는데 곰팡내 나는 책이 몇 권 있었다. 그 중 한권이 ‘한오대 계안’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에 쓰여진 귀한 향토 사료다. 시골에는 마을마다 상부계라는 것이 있다. 내가 사는 운서마을에도 매년 연말이면 동민들이 회관에 모여 대동회를 하고, 상부계 회원들은 따로 남아 계를 하는데 유사가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나도 운서 상부계 계원으로서 유사를 한 적이 있는데 ‘한오대 계안’을 보니 우리 마을의 상부계 계안(?)이 오버랩 되었다. 한오대는 한남진(화산 제7곡)과 오서(새우섬, 화산 제6곡)을 조망하는 아름다운 누대다. 1896년에 엄천강 가에 사는 유생들이 새우섬에 귀양와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손 한남군의 유적지에서 계를 만든 것이 한오대 계의 시작이다. 당시에는 몇몇 선비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한오대 계안’에 의하면 1917년에 23명으로 계원이 늘어났고 그 명단은 지금도 한오대 바위에 각자되어 있다. 서책에 의하면 한오대 위쪽 언덕에 한오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정자는 1931년 청기와를 얹어 3칸으로 지었는데 아쉽게도 3년 뒤 큰물이 나서 떠내려가 버렸다. 한오정에 대해서는 그런 게 있었다고 구전될 뿐 관련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 기록을 찾은 것이다. 아마도 한오정에 관한 유일한 사료가 아닌가 한다. ‘오향(에) 산천수려(하고) 인물위대(하니)’로 시작하는 명문 한오정기를 읽다가 문득 한오정은 언젠가는 복원되어야 할 정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이 되면 ‘오향 산천수려’로 시작하는 한오정기를 현판으로 만들어 걸어야 할 것이다. 십수년 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가 이번에 복원된 농월정처럼 한오정도 복원을 해야 할 것이다. 옛날처럼 3칸으로 청기와 얹어서 한오대 위 언덕에 짓고 엄천강 가에 사는, 엄천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술도 한잔 하고 ‘한오대 계안’에 앞 다투어 이름 석자를 올려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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