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수목들이 혈기왕성한 한 때를 보여주고 있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계절이다. 도로변의 나무들도 각양각색으로 가지를 뻗고 넓은 잎사귀를 펼쳐 지나가는 차량들에 푸른 손을 흔든다. 수도권의 대단지 아파트는 단지 내에 숲 같은 공원을 조성하여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도심의 가로수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폭염에 지친 시민들을 위로한다. 도시든 아파트든 계획적으로 ‘자연친화’를 추구한다. 지난봄에 몸통만 남겨두고 가지를 모조리 잘라버린 함양읍의 가로수는 볼 때마다 삭막하고 몰인정하게 느껴진다. 하필 새 잎이 한 잎 두잎 돋아나는 경이로운 순간에 가로수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가로수의 단발령은 몰지각했다. 이 결정이 최종 결재권자의 일방적인 지시이든, 누군가가 제안하고 의논하는 과정이 있었든 비루한 안목과 앞뒤 없는 맥락은 인격이 모자란 사람을 보듯 불쾌했다. 상림을 자랑하면서 가로수는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버린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나무에게 무슨 짓을 한거냐”며 외면했다. 어떤 해외 주재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혀를 찼다. 곽재구는 ‘은행나무’를 보고 마음을 금빛 추억으로 물들이는 시를 썼고, 구르몽은 ‘낙엽’ 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리느냐고, ‘시몬’을 불러들여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라’고 이야기한다.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를 맡고 ‘백화점의 아래층에서 커피를 찧어 가방에 넣어가지고’ 오면서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김용준은 ‘매화’가 구름같이 피어있는 자태를 달과 함께 보기 위하여 ‘십리나 되는 비탈길을 얼음빙판에 코방아를 찧어가면서’ 초라한 선생의 서재를 황혼 가까이 찾아’간다. 젊은 그는 늙은 감나무 세 그루를 사랑하여 이사를 하고 그 집을 ‘노시산방老枾山房’이라 이름 짓는다. 나무란 이토록 문학적 감성과 함께 인생에 대한 성찰과 미美와 인격의 도야와 품격을 한꺼번에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가로수 아래에서 봄밤의 훈훈함과 함께 연초록의 새잎이 돋아나는 경이로움에 어떤 소년이 문학적 감성의 눈을 뜨게 될런지도 모르고 선생의 설명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은유’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여름, 짙푸른 나뭇잎들을 보면서 이양하처럼 신록예찬을 누가 또 쓰게 될지 알 수 없으며 이문세처럼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노래를 부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읍내 가로수의 빈약한 그늘에 서니 누군가의 문학적 근원이 되는 어떤 기회를 빼앗기고 반감만 높이 쌓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둡다. 가을이 되면 서울시는 74곳의 단풍낙엽 거리를 뽑아 일정기간 낙엽을 쓸지않고 시민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상젤리제 거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잘 관리된 수목들의 아름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웃 고장의 은행나무 거리처럼 작은 읍내의 소박하고 소소한 아름다움은 지켰어야 했다. 무한한 생명력과 그늘과 재목과 열매를 주고 끝내 놀이터가 되어 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대해 인간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겠는가. 희생과 헌신을 일방적으로 취할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누구의 눈에도 무뢰하지 않고 ‘그럴 만 하다’고 느낄 정도의 ‘가지치기’를 했다면 나무를 보는 마음이 이토록 소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홍준의 “아는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만큼 보인다”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알지 못해서 느끼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말의 인용도 많았을 것이다. 문제의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이기 때문에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데올로기를 우리 앞에 펼친(tvN 알쓸신잡) 것이다. 그는 유적지의 안내문에서도, 관광지의 안내방송에서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짚어낸다. 유홍준과 유시민이 함양읍의 가로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어느 고장을 가든 가로수를 살피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안목을 점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몸통만 남기고 다 잘려버렸음에도 안간힘을 쓰듯 옹색하게 잎은 돋아났지만 그 꼴이 비루하여 인간의 몰염치와 무례가 더욱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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