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여름이 아니다. 여름이 여름이지 왜 여름이 아니냐고? 여름이 옛날 여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에는 아무리 더운 한 여름도 이정도로 덥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덜 덥다는 산골짝 집도 이제는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여름나기가 힘들게 되었다. 옛날이라 했지만 그 옛날이 수백 년 전도 아니고 수십 년 전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수년 전이다. 그러니까 기껏 5~6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이 이렇게 덥지는 않았었다.
16년 전 내가 지리산 골짝 마을에 집을 지을 때만 해도 여름에는 선풍기 한 대만 있으면 그럭저럭 더위 식힐만했고 에어컨까지는 필요가 없었다. 귀농하면서 필요 없게 되었다며 에어컨은 필요한 사람에게 인심 쓰고 왔는데 최근에 어쩔 수 없이 새로 구입했다. 며칠 전에는 서울 사는 친구랑 안부 통화 중에 내가 “요즘 더워 못살겠다~”고 하니, 친구는 “지리산에 살면서 더워 못살겠다~고 하면 서울 사는 자기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모르는 사람은 내가 지리산 자락에 산다고 한 여름에도 시원하게 잘 지내는 줄 아는데 천만에 말씀이다. 한 여름 푹푹 찌는 불볕더위에는 서울이고 지리산이고 아파트고 시골집이고 덥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산골 집은 도시처럼 열대야가 없다는 게 다를 뿐이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여름에도 그런대로 지낼만했다. 한 여름 정말 더운 날이라고 해봐야 기껏 2~3일 정도만 견디면 되었고, 또 그런 날은 근처 시원한 계곡에서 한 두 시간 발 담그고 오면 저녁부터는 더운 줄 모르고 지나갔다. 심심하면 엄천강에서 뜰채로 물고기 잡아 어탕도 끓여 먹고, 낚시로 꺽지 잡아 소금구이도 해 먹고 여름이 결코 힘들기만 한 계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여름이 오면 참기 힘든 날이 열배 스무 배는 많아졌다. 덥다고 허구한 날 계곡에 발 담그고 있을 수만은 없고, 매일 강에서 물고기만 잡아먹을 수는 없다. 여름이 여름이 아니니 이제는 새로운 메뉴얼의 여름 사용 설명서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한 때는 더운 여름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것이 번거로워 집에서 시원한 수박 먹고 책 읽는 즐거움으로 여름 넘겼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노안이 오니 책보는 것도 눈이 피곤해서 시들해졌다. TV에서 재밌는 영화나 찾아보자니 맨날 그 영화가 그 영화라 재미가 없다. 주인공은 신기하게 총알이 피해가고 주인공이 아닌 수많은 악당에게는 총알이 기어코 찾아가는 그렇고 그런 영화가 대부분이다. 처음 5분만 보면 다 본거나 마찬가지라 채널만 계속 돌리게 된다. ( 이거 리모콘에 채널 자동 돌리기 기능이라도 있어야지 원~ 어디 정말 삼빡한 여름 사용 설명서가 없을까?)
그러고 보니 한동안 여름 휴가철만 되면 놀러 와서 며칠씩 묵어가던 친구들이 요즘 영 뜸하다. 아니 아예 안 오고 있다. 서울과 부산에 사는 친구 둘은 매년 여름이면 가족이랑 놀러와 집 주변 계곡에서 며칠씩 더위 식히고 잘 놀다갔는데, 그리고 밤늦게 술도 마시고 시끌벅적 재밌었는데 요즘은 일부러 전화를 해서 놀러오라고 해도 오겠다는 말만하고 안 오고 있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더 이상 부모 따라 다니지 않으니, 또 이제는 여름이 너무 뜨거우니 지리산 자락 친구 집에 오지 않고 시원한 곳을 찾아 해외여행이나 가는 모양이다. (그래 이 자슥들아~ 느그들끼리 잘 묵고 잘 살아라~ 농부에게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라, 이 몸은 이제 여름 사용 설명서 타령 그만하고 감나무 밭에 풀이나 베러 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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