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초인적인 힘이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뉴스가 생각난다. 어느 여학생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목격하게 되었는데, 맨발로 수십 미터를 쫓아가서 자기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던져서 강도를 제압했고, 강도는 경찰에 넘겨졌다는 뉴스였다.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 여학생은 무슨 무술을 하는 여학생도 아니었다고 한다. 깡마른 체격인데다가 덩치도 크지 않은 여학생이었다는데, 그 여학생이 강도를 잡아서 경찰에 넘기고 보니까, 그 강도에게는 갓난아기도 있었고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여학생은 용감한 시민 상으로 받은 상금을 그 강도의 집에 있는 갓난아기를 위해서 분유와 기저귀를 사서 선물을 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대구에서는 6층에서 아기가 떨어지는 것을 본 행인이 급하게 달려가서 아기를 받아서 살려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너무나 급했기 때문에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에 그런 초인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초능력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있었다. 필자는 어렸을 때 TV를 통해서 6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 또 급할 때면 감정이 폭발하면서 괴물로 변한다는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이런 방송 소재들이 시청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이 너무나 연약하고 무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이 쉽게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서 마술이나 기상천외한 무술 같은 것에 매료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많은 기적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처럼 무슨 병을 고친다든지, 귀신을 쫓아낸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하다못해 방언이라도 해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지혜와 믿음과 권능의 순서를 제시하면서 제일 먼저 지혜를 꼽고 있다. 헬라철학에서는 지혜를 소피아(sophia)라고 하는데, ‘어떤 사물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나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을 일컫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로고스라고 표기하면서 ‘말씀’이라고 번역한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믿음도 지혜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권능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의 지혜를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벌컥 벌컥 농약을 마신다면 어찌 되겠는가? 지혜가 없는 것은 믿음도 아니고, 권능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무 데서나 마구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으셨다. 연애를 하는 남녀들이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는 것처럼 지혜롭게 처신하셨던 것이다.
그 다음은 믿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하셨다. 먼 길을 떠나려면 뭔가 준비도 해야 하고, 계획도 세워야 하는 법인데, 예수님께서는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슬슬 남의 눈치를 보면서 먹고 살 궁리나 하고, 어디 땅이나 사둘 궁리나 하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야 삶 속에서 권능이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무조건 나가서 회개하라고 전파했다. 그랬더니 귀신들이 쫓겨나고,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주었더니 병이 다 나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현들의 말씀이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처세술이 될 수도 있고, 자기 인격 수양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도시민과는 달리 시골에 사는 우리들은 더욱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빛 좋은 함양, 다볕 고을에 온갖 꽃들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는 계절이 되면서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가 많다. 머잖아 과수원엔 사과가 튼실하게 자랄 것이고 점점 붉은 빛을 띠게 될 때, 유명 가수의 노랫말처럼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간다고 말할 수 있도록 시골 사람답게 우리 모두 여유롭게 살아가자! 인산 죽염 한 알 입에 넣을 때마다 달콤한 인생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덤덤해 보일지라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멋진 맛을 내어 보자!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도 뜨거운 태양을 식혀주는 커다란 나무가 되지 않겠는가? 대학 시절 앳된 모습이었던 연극반 후배가 지난 해 함양으로 귀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조금씩 지리산을 닮아가고 있을 후배에게 전화나 한 통 해줘야겠다. 그 친구는 어떤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사는지, 그리고 함양에 내려와서 어떤 권능이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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