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위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물돌이 지형은 그 유명한 안동 하회마을의 풍경입니다.’ 라고 말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함양 장날에 장보러온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 물돌이 지형은 함양 엄천강에 있는 풍경입니다.’라고 말하면 모두들 ‘엄천강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라며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함양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엄천강 가에 사는 주민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는데, (헐~ 그렇네~ 다시 보니 여기는 자혜리네~)라고 하는 사람은 그나마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건데 이 물돌이 지형은 엄천강 풍경이다.
옛 사람들이 금강산에 만폭동이 있으면 지리산에 엄천강이 있다고 했다는데, 최근에 엄천강 열두 비경인 화산12곡이 발굴되어 새삼스레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화산이란 엄천강의 진산인 법화산을 말하는데, 용유담에서 물돌이 자혜마을까지 엄천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서로 밀고 당기며 열두 굽이 명승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화산제1곡인 용유담에서 시작되어 화산제12곡 물돌이 함허정에서 끝나는 화산12곡은 옛날 엄천강에 살았던 선비들이 남겼던 한시인데, 부산에 사는 재야 한학자 이재구 선생이 국립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자료를 발굴하고 2년에 걸친 고증작업을 거쳐 40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공개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화산12곡이라는 게 있는 줄로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엄천골 사람들은 강학기 선생을 중심으로 ‘엄천강 둘레길 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함양군 문화관광과에서는 엄천강 트래킹 길을 만들기 위해 관련 작업에 들어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더니, 논문을 쓴 학자는 잠자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과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하였지만,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는 화산12곡의 상업적인 가치에 더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따끈따끈한 화산12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미 촬영까지 마친 엠비씨경남에서는 ‘그레이트 지리산’이라는 50분짜리 다큐를 총20회 방영할 예정인데, 엄천강 화산12곡을 2회에 걸쳐 집중조명하게 된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함양을 사랑하는, 엄천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6월15일(목)과 22일(목) 밤11시10분 본방사수 하시라.
엄천골 둘레길 추진위원회와 함양군의 작업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엄천강 트래킹 길이 개통되면 지리산둘레길 5개 구간이 처음 개통되었을 때처럼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다시피 최근 걷기 열풍을 타고 전국적으로 둘레길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강을 트래킹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면 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엄천강 정말 조쿠나~ 우리나라 금수강산~)하고 탄성을 지를 것이고, 함양을 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 하며 이렇게 좋은 걸 그동안 나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당혹감에 자괴감마저 들 것이다. 지리산이 좋아서, 함양이 좋아서, 엄천강이 좋아서, 화산제10곡 칠리탄이 흐르는 운서마을로 귀농한지 16년째인 나는 화산12곡을 발굴한 이재구 선생에게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나는 그동안 말로만 엄천강을 사랑한다고 했지 몸으로 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수 좋은 뇬은 자빠져도 가지 밭에 자빠진다더니 내가 그렇다. 이건 내말이 아니고 우연히 엄천강 마을로 귀농한 나를 두고 놀린다고 이재구 선생이 한 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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