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녹을 먹으며 군민들을 위해 봉사한 여기 2명이 평생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 한다. 하성수 함양읍장과 한옥현 유림면장. 20대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 30~40년간 함양의 발전과 군민의 안녕을 위해 젊음을 바친 이들. 그들이 바랐던 공직에서의 꿈과 그 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았던 일들을 모두 싣지는 못하지만 이 인터뷰로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보내려 한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던 공직생활이었다한옥현 유림면장싸나이 한옥현 유림면장이 정년을 맞는다. 지난 1984년 공직에 들어온 이후 33년 만이다. 상사에게 바른 소리도 많이 했고, 공노조 활동으로 눈밖에 나기도했던 한옥현 면장. “군민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못 다한 일들은 후배들이 해 줄 것이라 믿는다.” 30여년 공직을 회고하며 한옥현 면장은 “행복했다”라고 말한다.
지난 1984년 8월1일은 그가 부산 서구청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날이다. 이후 87년에 고향 함양으로 들어와 이번에 공직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올곧은 성격으로 윗사람들에게 바른 소리 잘했던 그. “처음 부산에서 함양으로 들어왔을 때는 부산과 함양의 공직문화가 너무 차이가 났다. 함양의 폐쇄적 인사, 침체된 공직사회 분위기는 적응하기에 힘들었다”
그는 지난 2000년 직장협의회가 만들어지고 2002년 공무원노조 함양군지부가 출범하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노조 함양지부 사무국장을 맞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공무원 복지와 처우개선, 공직 분위기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공직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만 해도 공무원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봉사만을 원했다.” 공노조 일선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폐쇄적인 인사제도 직원들의 인권이나 복지 등에 대한 개선이 많이 이뤄졌다. “그 시기에는 꼭 필요해서 했던 일들이다.” 바른소리 잘하고, 거기에다 공노조 활동까지. 윗선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일들만 하니 당연히 승진은 늦어졌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해봤자 건강만 해롭다. 이미 그렇게 된 것을...” 한옥현 면장은 실제로 상당히 늦게 승진했다. 84년에 9급으로 시작했던 그는 87년에 8급, 92년에 7급을 달았다. 이후 10년 넘게 승진하지 못하다 2004년에 6급이 되었으며, 지난해 7월 5급으로 승진해 유림면장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군청 내 주요부서를 두루 거친 행정 전문가다. 그가 거친 대부분의 부서가 함양 지역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었다. 기획감사실, 민원실, 행정과, 주민생활지원실, 지역경제과 등 군청 내의 요직들을 두루 거쳤다. 반대로 함양읍과 백전면, 마천면, 유림면 등을 제외한 읍면 지역에는 많이 다니지 않았다.
그가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곳은 유림면이다. “유림은 함양읍을 제외하고 가장 넓은 평야지대이다. 면민들의 성향도 느긋하고 편안하다. 그래서인지 그 동안 군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05년 산업계장으로 인연이 있던 유림면에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일들을 해 나갔다. 우선 10여 년 간 지역사회 숙원사업이었던 남부체육공원이 가닥을 잡았다. 체육공원이 아닌 축구장과 실내체육관 등을 만들기로 이미 협의가 마무리됐다. 또 광역상수도도 추진되고 있으며, 소재지권 하수도 정비사업 등 여러 굵직한 일들을 추진했다. “나름대로 지역 발전과 군민들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소위 말하는 ‘전시행정’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후배들에게도 군민들을 위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평생을 최선을 다해 일했던 그가 이제 공직생활을 떠나려 한다. “공무원하면서 바빠 못했던 취미생활도 해보고, 그 동안 함부로 했던 몸도 좀 챙기고, 기족과 집안, 친구들에게 잘하고, 생각나면 여행도 다닐 생각이다. 그 동안 힘들게 일하며 달려 왔으니 쉬어야 한다” 이렇다 할 큰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소소한 일들을 해 나가고 싶다는 한옥현 면장. “어릴 때 농사도 지어 봤는데, 나이 들어 힘들어서 못 한다. 실속 있는 일들을 해볼 생각이다” 바른 소릴 잘했던 그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바꾸고 싶어도 안 되니까 혼자 스트레스가 쌓였다. 술도 자주는 안 먹는데 한 번씩 폭주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빨리 풀어낸다. 안 되는 것 고민하고 잠 못 자고 해서 뭐 하겠나. 직원들에게도 싫은 소리 안한다. 열심히 하는데 잔소리해서 뭐하겠나. 고생한다고 다독이고”
이제 공직생활을 마무리 하는 그는 10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공로연수와 퇴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단다. “6개월 더하면 뭐하겠나. 후배들 인사적체도 풀고, 일찍 자리 비켜주고 건강하게 살 것이다” 오는 6월30일 오전 직원들과 이장단, 기관단체장들과 함께 약식 퇴임식을 갖고 평생을 바쳤던 공직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끝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은 잘 챙기고 물러나도록 할 것이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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