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녹을 먹으며 군민들을 위해 봉사한 여기 2명이 평생을 몸담았던 공직을 떠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 한다. 하성수 함양읍장과 한옥현 유림면장. 20대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 30~40년간 함양의 발전과 군민의 안녕을 위해 젊음을 바친 이들. 그들이 바랐던 공직에서의 꿈과 그 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았던 일들을 모두 싣지는 못하지만 이 인터뷰로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보내려 한다.
마음 속 소통행정, 40년이 즐거웠다하성수 함양읍장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 인간적이면서도 업무 추진에는 무서운 강단을 보이며 군의 행정을 이끌던 하성수 함양읍장이 4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한다. 평생을 함양군 발전에 바쳐온 그는 40년 공직생활을 회고하며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1977년 11월10일 병곡면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던 하성수 읍장이 40년 공직생활을 접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그는 “공직과 관련되는 일에는 종사하지 않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관련이 되지 않은 것을 찾다보니 농사밖에 없었다.”며 퇴직 후 농사꾼으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딱 40년 만이다. 그는 지난 2007년 10월 사무관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군청에서의 업무보다는 읍·면장을 하며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즐겼다. 활달한 성격의 그에게 군청 내에서의 기획보다는 직접 주민들을 대면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기획보다는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읍면으로 많이 다녔다. 군의 과장은 기획력과 외부 마인드가 있어야하고, 읍·면장은 발로 뛰면서 주민들과 대면하고, 전체를 다 알아야 한다. 주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안 되는 일도 만들어 내려하니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조금은 고달팠을 것이다.” 언제나 활달한 그에게도 업무적으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다. 허가부서에서 많이 근무한 그에게 언제나 감사는 발목을 잡기도 했다. “징계 등도 많이 받아 속앓이도 많았지만 재미있었다. 하고 싶은 일들을 재미있게 해 왔다” 즐겁게 일한 하성수 읍장은 재미있었다는 말로 40년 공직생활을 평가했다.
그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던 1977년도는 모든 사회 인프라가 부족했던 시기다. 도로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로 공무원 생활이 상당히 힘들었다. “병곡면에서 근무할 당시 원산에서 반상회를 할라 치면 마치면 어두워서 내려오지 못하고 잠을 자고 내려와야 할 정도였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참 좋게 변했다” 조금은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하성수 읍장을 비롯한 당시 근무했던 공무원들이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내고 이룩해 낸 결과물들이 바로 지금 함양의 모습이다. 또 그는 최근 가뭄에 대해서도 “지금도 가물지만 그 당시에는 한해대책이 큰일이었다. 밤새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퍼고 그랬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라며 그 당시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군청 내부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인간적이면서도 강단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물론 40년 공직생활도 그렇게 해 왔다. 그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마음의 소통이다. “공무원들은 명분을 만든다. 그러나 명분이 전부는 아니다. 명분으로 상대방에게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 주는 것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명분대로 한다면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테니스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퇴임 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그는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생각대로 자그마한 농장과 밤나무, 호두나무를 가꿀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농사일을 돕는 등 일을 많이 하면서 자라 일에 대해서는 겁을 내지 않는다. 그는 퇴임 후의 하루 일과표까지 만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농장으로 출근해 그곳에서 아침을 먹은 후 일을 하고, 11시 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 그리고 오후 3시쯤에는 아내와 함께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테니스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하루 일과지만 그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싶어 한다. 영어회화 공부도 수년전부터 시작했다. “사무관 승진 후 그렇게 좋아했던 테니스도 못하고 여행도 못 다녔다. 그 만큼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아내와 함께 1년에 한 번씩은 해외로 자유여행을 다니고 싶어 시작한 공부다.
주변에서는 그가 퇴직 후 선거에 뛰어들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말들이 오간다. 이 같은 소문에 대해 그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선거 등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발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군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당락을 떠나 지금까지 관계했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는 않다. 나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사람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1순위가 바로 선거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어떤 회유가 와도 선거만은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별도의 퇴임식 등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는 6월29일 그 동안 믿고 따라준 읍사무소 직원들과 밥 한 끼를 나누며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생각이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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