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특히 밭일은 때가 있다. 제 때 해야지 미루었다가 뒤늦게 하려고 하면 일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날 수 있다. 또 너무 늦으면 완전 망칠 수도 있다. 어찌 밭농사만 그렇겠는가?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일이란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삼월에 감나무 전정 작업을 했다. 처음 써보는 충전식 전동가위의 위력에 감격하며 신나게 가지를 쳐내었다. 일은 결국 장비가 하는 것이고, 고가의 충전식 전동가위는 임대장비로 아무 때나 내 손에 들어오는 게 아닌지라, 있을 때 마음먹고 하느라 좀 오버했더니 치워야할 가지가 수북이 쌓였다. 어떤 나무는 아뿔사~ 내가 너무 심했나? 싶을 정도로 쳐내어 아예 반 토막이 나버렸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한 결과 밭은 잔가지의 바다로 변했고, 감나무는 거친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이 되었다. 그 잔가지를 바로바로 정리하여 차곡차곡 재어 놓았으면 훌륭한 땔감이 되었을 텐데 다음에 해야지 하고는 잊어버렸다. (사실 농부가 어찌 이런 일을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게으름이 나서 일부러 잊어버린 것이다.) 그때 바로 처리했으면 내가 오늘의 낭패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일이란 제때 해야 하는 것이다. 다 내 잘못이다. 오월의 마지막 고개를 넘어선 감나무 밭은 이제 잡초와 덩굴의 바다가 되었다. 치워야 할 가지들 은 초록의 바다에 빠져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잡초는 파도처럼 출렁이고 모든 것을 감아버리는 덩굴은 감나무 둥치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청룡언월도같은 장대 조선낫으로 잔가지를 걷어 올리는데 덩굴이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고기잡이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힘이 든다. 그때 바로 치웠으면 힘쓸 일도 아닌데 말이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없는 일을 만들어 하는 내가 참 한심하다. 봄 가뭄이라고 아우성인데 잡초는 가뭄과는 상관없는 모양으로 잘만 자란다. 여기에 비라도 한번 내리면 사람 키만큼 자랄 터라 상황이 좀 다급해졌다. 잔가지를 치우지 않고 예초기를 돌리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으니 나는 뒤늦게 서두른다. 지난 해 이맘때는 감나무 밭에 거름을 져다 나르며 한 포씩 더 날랐다. 한포는 바로 뜯어 뿌리고 한 포는 올해 쓸려고 미리 갖다 놓은 것이다. 두 번 할 일을 한 번에 했으니 이건 참 잘한 일이다. 다만 이것도 잡초가 밭을 덮기 전에 뿌렸어야 하는 건데 이제사 하려고하니 잘한 일이 허사가 되었다. 잡초 속에 숨어있는 거름 푸대를 일일이 발굴해서 뿌려야 하는데 혹 뱀이라도 나올까봐 겁이 난다. 뒤늦게 거름이랍시고 뿌리지만 정작 감나무 보다 잡초들이 더 반길 것 같다. 관운장이 적진에서 홀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듯, 나는 감나무 밭에서 장대조선낫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사위질빵의 끈질긴 저항이 있었지만 자칭 농림의 고수인 나의 에라모리것다 낫법에 덩굴들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졌다. 잠깐이면 할 일을 때를 놓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땀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감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은 모두 걷어내었고 잔가지도 얼추 다 걷어내었다. 나의 묵인아래 매년 세력을 키워가는 엉겅퀴가 밭 한 귀퉁이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씨앗으로 오늘의 교훈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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