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다 보니 오가며 눈인사를 건네는 손님들이 많다. 잠깐이지만 바깥에서 안부를 묻고 가기도 한다. 시장 초입이라 특별한 단골도 많지만 뜨내기손님도 많은 편이다. 지리산 함양시장 내 거창상회. 이곳에서 40년 동안 옷 등을 팔고 있는 거창상회 박영금(76)·강옥영(73) 부부가 사는 모습이다. 거창상회는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4평 남짓하게 시작한 옷가게는 이제 만물상처럼 이것저것 천으로 만든 것은 모두 판매한다. 옷은 물론이고 비단도 팔고, 이불도 팔고, 한복도 대여하는 종합 매장으로 변했다. 거창댁 강옥영 여사는 거창상회를 지금까지 꿋꿋하게 지켜내는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지인의 소개로 4평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는데, 바로 앞 가게로 넓히고 넓혀 지금처럼 조금 커지게 됐다.” 거창에 살다 함양으로 들어와 옷 가게를 차린 것이 40년 전으로 그녀의 큰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란다. 옷가게에서 앞의 비단가게를 인수하며 비단도 팔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 가게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40년 동안 늘 그 곳에 있어온 거창상회. 70대 초반인 강옥영 여사는 함양시장에서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장사를 시작한 축에 속한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그녀의 단골 고객들도 그녀와 함께 늙어갔다. “단골도 많았지. 다른 집들은 면단위 장을 찾아 다녔지만 우리 집은 매일 여기서 장사를 했으니까. 그때 그분들 많이 돌아가시고 연세들이 많이 드셨어” 요즘과 다르게 예전에는 시장 메이커가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서민들은 시내 양품점까지 가서 옷을 사기 어려운 시대였다. 여기를 많이 와서 사갔다.” 인구가 많았던 옛적에는 아동복이 그렇게 잘 팔렸단다. 명절이면 빼곡하게 손님들을 맞았던 추억의 장소다. 인구가 줄고, 특히 아이들이 줄면서 아동복은 팔리지 않아 완전히 접었다. 그녀는 최근 한복 대여도 하고 있다. 한쪽에는 알록달록 남녀 한복이 줄지어 서 있다. 40여벌의 한복을 준비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여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다. “어차피 평생을 여기서 장사하고 돈을 벌었는데 그 분들 좀 편하게 해 드리자고 시작하게 됐다.” 새 한복을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가지만 대여하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2시간 정도 거창상회에 있는 동안 전통시장만의 정(情)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할머니는 가방에서 검은색 비닐봉투를 꺼내며 일전에 사간 꽃무늬 블라우스가 작아 바꾸기 위해 들렀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게 곳곳을 누비며 할머니에게 어울릴 만한 옷들을 찾아나서는 강옥영 여사. 그렇게 10여분 만에 할머니는 마음에 드는 옷을 손에 들고 가게를 나섰다. 또 다른 할머니는 바지 주머니에서 급하게 몇 만원을 건네며 ‘예전에 외상 했던 거’라며 쏜살같이 나간다. “길을 가다가도 불러서 가보면 외상값이라며 주고 간다. 언제 외상을 했는지도 기억을 못하는데...” 돈을 받은 강 여사는 “4만원은 재수 없어. 여기 천원 가져가”라며 손에 쥐여 준다. “차비라도 하라고 깎아 준다. 이게 정(情) 아니겠나” 외상 장부도 없고 그냥 지나다 생각나면 들러 돈을 주고 간다. 비단과 한복이 전시된 작은방은 이곳 거창상회 단골손님들의 사랑방이다. 겨울에는 난방을 하고, 여름이면 시원하게 에어컨도 틀어 지친 단골들이 잠시지만 쉴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거창상회는 어머니들의 쉼터가 되고 어머니의 수다방이 된다. “단골이 모두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다. 젊어서 맺었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 이웃이 바빠 자리를 비울라치면 함께 봐 주기도 한다. 수십 년을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살아온 정이다. 아직은 건강하지만 언제까지 함양시장에서 장사를 할지 모르겠다는 강옥영 여사. “손님이 오면 재밌다.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도 하고, 또 소식도 들을 수 있고. 그런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80살 까지는 해야 되지 않겠나.” 40년간 든든하게 함양시장을 지켜온 박영금·강옥영의 거창상회. 지리산 함양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언제나 한 아름 정(情)을 선물해주길 기원한다.강대용 기자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