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이미지를 결정한다. 그녀가 외모에 신경 쓸 것인가, 일에 전념할 것인가. 피우진 보훈처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에게서 일에 대한 전문성과 강한 신념이 엿보인다. 이미 알려진 이력이나 에피소드는 더욱 신뢰가 간다. 군軍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피처장과 강후보의 품격있는 영어 인터뷰(YouTube)는 그녀들의 신념과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른 체형의 피처장과 백발의 강후보를 보면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가 연상된다. 그녀들은 피부를 위하여 시간을 허비할 것 같지는 않다.
유럽연합을 이끌고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든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의 정치적 역량은 전 세계가 아는 일이다. 그런 그녀의 일화에 한국인들은 놀란다. 총리로 12년 간 재임 중인 54년생 메르켈은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마트에서 카트를 밀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장을 본다. 긴급사태가 발생하자 젖은 머리로 출근하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2003년부터 이용한 발츠 미용실에서 총리가 되자 별실로 옮겨주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거부하고 평소대로 다른 고객들 옆자리에 앉으며 까다롭지 않아서 직원들이 선호한다’는 인터뷰 기사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최고위직 총리의 탈권위적인 면모를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며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IMF 여성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56년생) 역시 ‘자신감과 냉정,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질문에는 직설적으로 명쾌하게 대답하는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다. 경제와 정치를 동시에 알고 있는 능력있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dail mail은 “글로벌 이기 속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 인물이 있다면 그는 분명 라가르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프랑스 여성답게 패셔니스타라는 찬사도 받고 있으나 거부감이 없다. 자수성가형 리더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초고속 승진을 한 이력 때문일 것이다. 큰 키에 남성성이 엿보이는 그녀 역시 백발을 휘날린다. 반백의 강경화 후보와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백발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머리 색깔을 개의치 않는다”는 강경화 후보의 얼굴은 화장기도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유리천장을 깬 여성리더들과 다르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조명한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상대적으로 아프게 부각된다. 하루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이 책이 무겁게 읽히는 것은 여성으로 사는 것의 고단함과 유독 여성에게 향하는 편견과 왜곡의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 여전히 며느리에 대한 시집식구들의 불합리한 인식이 만연해 있고, 여성비하와 여성혐오의 언어가 나돌아 다니며,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유리천장이 공고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의당 노회찬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부부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한 것은 보이지 않는 여성차별에 대해 관심을 가져 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여군으로 근무했을 때의 ‘술자리 전투복여군’ 에피소드 역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먼저다’ 라는 슬로건에 걸맞는 행보를 보임으로서 국민들의 찬사를 받고 의미있는 파격적 인사로 주목을 받는다.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문대통령은 알 것이라고 믿는다. 메르켈과 라가르드는 능력이 뛰어나고 신념이 투철한 영향력있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피처장과 강후보도 자기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비단 그녀들뿐이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그녀들도 그녀들처럼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여성이어서 파격이라는 말은 그동안 여성에게 편파적이었다는 말로 들려 불편하다. 모든 그녀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움츠렸던 날개를 찬란하게 펼 수 있도록, 여성이어서 불편하고 여성이어서 차별받지 않도록, 여성이어서 남자들이 가벼이 보지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수많은 그녀들이 육아를 마치고도 당당하게 능력과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성숙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되기를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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