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3일 아침8시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3호차에 승차하여 출발했다, 고속도로로 운행하여 남원휴계소, 보성휴게소에서 기지개 펴고, 보성톨게이트로 나왔다. 장흥의 최북단지역인 보림사에 도착하니 장흥군청 파견 김정미 해설사가 합류했다. 연꽃모양 산세에 자리한 보림사는 달마대사가 신봉하는 선종을 우리나라에 처음 전파한 곳이고 약 1천300년(759)년 전에 창건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기나긴 세월 속에 파손과 복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보림사의 대적광전 안에는 국보 제117호의 철조 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손에 막대기를 잡고 있어 불자와 스님이 함께한다라고 한다. 또 보조선사 창성비는 비의 형상이 머리는 용머리요, 등은 거북이고, 발톱은 코끼리 발톱이며 꼬리는 뱀 꼬리이다. 비석의 글은 선을 시작으로 “선이란 그윽하고 고요하다. 올바른 깨달음이란? 오묘하여 알기 어려워서 허공과도 같고, 바다와 같다”라고 시작하여 보조국사의 행적, 창건 연기 설화 등을 적고 있다. 이에 해설사는 용의 아들은 9명이 있다고 하여 대표적인 용은 첫째용은 무거운 짐을 좋아하는 용이고 둘째용은 이문이라 하여 멀리 내려다보는 용이다. 이곳 명부전 옥상에 자리잡고 보림사 경내 화재 등을 감시한다고 한다. 세째용은 코레라고 하며, 소리 지르기를 좋아하는 용이다. 이 용은 고래를 무서워한다고 한다. 고래모양 망치로 고래가 겁을 먹게 더 쎄게 종을 친다고 한다.
보림사를 떠나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해설사는 장흥의 특산물과 지명의 내력을 설명했다. 함양에는 인구늘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장흥도 함양과 같은 비슷한 인구가 형성되고 있다. 장흥인구가 4만2000명인데 소가 5만7000두로 사람보다 소가 많다. 또 표고버섯은 보림사 뒤편 소나무 속에서 자라서 솔향을 먹고 자라 좋다고 한다. 장흥 앞바다에서 키조개가 많이 생산된다. 이리하여 “삼합”의 브랜드가 생겨났다. 소고기와 표고버섯과 키조개 세 가지를 같이 먹는 음식이 삼합이라 한다. 장흥 특산물 음식이다. 전국에 삼합 먹으로 오니 장흥 야시장을 운영한다. 절로 소고기를 팔 수 있는 기회다. 이곳의 인물 소개도 했다. 미국의 골프왕 미셀위가 있다. 할아버지가 거주하여 장학금수여하기도 하고 농산물 브랜드 ‘미셀위’도 개발했다. 그 지역 외에도 타지에서 이름을 떨친 많은 분들의 소개도 했다.
이곳에 동학란의 일전 혈투지역이다. 어째서 동학란이 이곳을 모여 들었는지 이야기는 안했으나 아는 대로 적고자 한다. 장흥의 서쪽 수인산이 있다. 수인산 아래 강진 쪽에 전라 병영성이 있다. 이 병영성을 치기위해 전국의 동학란을 일으킨 자들이 장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라 병영성은 이때 초토화 되어 그 후로 복구가 불가능해 졌다. 이 전라병영성은 태조17년(1417년) 마천목장군이 병마절재사로 부임하면서 광주에 있는 전라병영을 강진으로 옮겨 수인산 밑에 전라병영성을 약 3만평을 축성하여 군대를 주둔하게 했다, 지금은 장흥에 마천목부대인 군부대가 있다. 병영주위 3개면은 세금을 면제해 주고 군량미를 제공받았다, 이때부터 장흥, 강진이 중국, 일본으로 무역을 하게 됐다. 시장이 형성되니 왜구들이 수시로 넘나들어 왜구와 군인들의 싸움으로 파란 만장한 전라 병영성이 됐다.
장흥댐을 지나서는 탐진강을 막아 다목적댐으로 서남해안 9개 시군(목포, 무안, 신안, 완도, 진도, 해남, 영암, 강진, 장흥) 지역의 식수를 제공하고 장흥을 관통하는 탐진강에는 물의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장흥의 억불산 앞 뾰족한 바위가 있다 아래에 편백숲 우주랜드 8~9만평의 휴양지가 있고 날등에는 천문데 있다. 뾰족한 바위는 며느리가 바위가 된 것으로 내력은 시아버지는 스님에게 쌀 창고에 구멍 뚫어 손을 한번만 넣어 쌀을 가져 가라했다. 스님이 쌀독에 손을 넣어 쌀을 냈다 손에 쌀이 적어 이를 본 며느리는 쌀 1되를 퍼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모월 모시 비바람치고 폭풍 치니 산으로 올라갈 것을 종용하면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고 스님은 떠났다. 그날이 돌아왔다. 시아버지 보고 피신하자고 했으나 재산 때문에 시아버지는 떠나지 못하고 며느리만 산으로 올라갔다. 거의 다 올라 갔을 때 시아버지가 “며느리야” 부르니 돌아보는 순간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때 며느리 머리에 쓰는 수건이 바람에 날려 장흥 시가지로 떨어지니 수건건자 써서 건산(巾山)이라는 지명이다 지금도 건산으로 불리고 있다.
장흥에는 씨 없고 껍데기만 두꺼운 귀족호두가 있다. 이 호두는 호두나무와 가래나무교잡종으로 호두알이 희귀하게 생길수록 값이 비싸다. 100년 된 8~9개 나무에 1년에 100개 열리지만 짝이 되는 호두는 6~7개 나오니 값이 높게 형성된다.
점심은 장흥의 최 남동지역인 고성과 인근지역 안양면 수문마을에 도착했다, 정남진 회타운에서 바자락회무침을 먹고, 장흥에 와서 글자랑 하지 말라는 장흥의 최 남서쪽인 대덕읍내 북쪽 천관산에 위치한 천관문학관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관산읍에 있는 한승원의 집 지붕이 빨갛고 손님을 맞이하는 집 지붕은 파랗다고 한다. 이청준과 한승원 소설가가 있어 장흥의 문학가들이 한층 빛이 난다, 한승원의 딸 한강도 세계3대 문학상 맨부커상을 받으니 더욱 힘차다. 장흥의 토성인 장흥임씨, 장흥마씨, 장흥위씨 장흥고씨도 천관산 주위에 모여 있다. 현재 청와대 비서실장도 관산읍 출신이다. 마지막 관람지역인 정남진 전망대는 장흥의 남쪽 중간지점인 곳이다. 10층 높이로 지어져 앞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고, 고흥 소록도와 건너는 다리가 보이며, 앞 바다 의 풍광도 그림같다.
장흥은 북쪽 끝(보림사)에서 동쪽 끝(수문마을 정남진 회타운), 남서쪽 끝(천관문학관)으로 가니 하루에 장흥의 현주소를 보았다. 가는 곳마다 의미를 더해주는 김정미 해설사에 감사하다. 가지 않은 서쪽은 강진 지역이다. 함양문화원의 문화답사는 우리들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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