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초딩5 아들이 쓴 등반 첫날인 2002년 8월29일 일기다.  “드디어 지리산 등반을 출발했다. 백무동 야영장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발길이 참 가볍고 편안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돌멩이 길, 바위 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좁은 길옆에는 낭떠러지였다. 한 2시간 걸은 후, 한 다리 밑에서 쉬었다. 초콜릿을 먹으면서 다시 출발. 1시간 후에, 밥을 먹었고, 3시간 30분 걸었을까 드디어 세석 산장에 도착했다. 밥을 먹고 손발 씻고 그리고 잤다. 참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세석산장에서 일박하고 지리 주능을 타고 벽소령으로 걷는데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3시간가량 걸어 벽소령에 도착하니 산장지기가 큰 태풍이 오고 있으니 얼른 하산하라 한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아 이상타했는데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하니 마음이 다급해져서 점심도 대충 먹고 음정으로 하산하는데 한낮인데도 안개가 자욱하고 길이 어둑어둑해져 하산길 시작단계부터 겁이 덜컥 날 정도였다. 다행히 아이들을 재촉하며  음정마을까지 별 탈 없이 내려왔는데 포장된 길에 들어서자마자 어른 손가락만큼 굵은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빗방울이 기상관측 이래 필적할만한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는 태풍 루사의 시작이었다. 이번 산행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했는지 깨닫는 데는 하산하고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태풍은 하산하는 우리 등 뒤를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었는데 우리가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바로 추월했을 것이다. 비가 얼마가 많이 쏟아졌는지 비가 내린다기보다 강물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 같았다. 루사는 말하자면 수직으로 흐르는 강이었던 것이다. 새 집을 짓고 큰물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나는 수시로 집주변 배수로를 점검하고 방송에서 보도되는 이웃마을 마천 산사태에 촉각을 세웠다. 산비탈 밭에 축대를 쌓고 새집을 지은 지 두 달밖에 안된 나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큰 비였고, 숨죽인 채 얼른 그 괴물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태풍 루사는 우리 마을로 건너오는 엄천교를 포함하여 엄천강에 있는 여러 다리들을 물위에 뜨게 했다. 우리가 하산한 다음날 이웃 마천에는 하루에만 600미리 이상의 집중호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나고 인명피해도 많이 발생했다. 그리고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북상해 전국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혔다. 루사는 역대 태풍 중에서 재산피해를 가장 많이 낸 태풍으로 기록되고 있다. 태풍 루사의 교훈으로 나는 산행할 때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뒤 나는 엄천골에 사는 6학년 7학년 상급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당일치기로 천왕봉에 갔다 온 적이 있다. 지리산같이 높고 넓고 깊은 산은 기상변화가 심해서 언제 하늘이 변득을 부릴지 모르므로 정말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을 택일해서 산에 올랐다. 당일치기로 천왕봉에서 도시락 먹고 내려오는 빡센 일정이었는데 6학년 졸업반과 7학년은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산행이었다. 게다가 명색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데, 일행의 등반장비 라는 게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어서 세동댁할매는 딸이 사준 멋쟁이 구두를 신고 오는가 하면 배낭도 대부분 개나리봇짐이었다. 스틱을 가져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그냥 개나리봇짐에 도시락과 과일 넣어온 게 다였다. 모두 16명이 백무동에서 하동바위로 코스를 잡고 올랐다. 아무리 지리산 자락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나이에 따른 체력부담과 변변치 못한 등반장비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천왕봉 산행은 날씨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장비도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야  엄한 고생을 하지 않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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