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음과 훈(訓)을 빌려 우리말로 적는 표기법을 이서(吏書) 또는 이두(吏頭)라고 부른다. 신라 초기부터 발달 고려 초까지 사용된 것으로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정리하여 우리 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두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定型詩歌) 즉 향가에 많이 쓰여졌는데 신라 고유의 노래, 고향의 노래, 가요를 의미한다. 현존하는 향가는 신라 진평왕 때의 《서동요(薯童謠)》를 비롯하여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도합 25수가 전해진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60년대 후반) 국어시간 10분간은 공포의 시간이었다. 무작위 번호를 불러 숙제로 내 준 문학작품이나 고문을 외어야 했는데 못 외우거나 틀린 사람은 대나무 자로 머리나 손바닥을 난타 당하여야 했다. 그 덕에 지금 머리털이 많이 빠져 있기도 하지만 향가 몇 수 아직도 외우고 있으니 다행이다.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선화공주님은 他 密只 嫁良 置古/타밀지가량치고/남 몰래 사귀어 薯童房乙/서동방을/맛둥[薯童]도련님을 夜矣 卯乙 抱遣 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서동요(薯童謠)는 백제 30대 무왕과 관련되어 있다. 백제 사람인 가난한 서동은 마를 캐면서 살았기에 맛동이라고 불리었는데, 신라에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이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소문을 퍼뜨렸다. 계획대로 쫓겨난 공주와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서동은 백제의 왕이 되고 결국 선화공주와 함께 유명한 백제 사찰인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향가의 최고봉은 《처용가(處容歌)》다. 처용가 만큼 재미나고 회자되는 것이 있을까? 東京明期月良/셔블발기달애/서울 밝은 달에 夜入伊遊行如可/밤드리 노니다가/밤들이 노니다가 入良沙寢矣見昆/드러 자리 보곤/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脚烏伊四是良羅/가리 네히어라/가랑이가 넷이도다 二肹隱吾下於叱古/둘흔 내해엇고/둘은 나의 것이었고 二肹隱誰支下焉古/둘흔 뉘해언고/둘은 누구의 것인가? 本矣吾下是如馬於隱/본 내해다마/본디 내 것이지마는 奪叱良乙何如爲理古/아 엇디릿고/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處容歌) 하하하. 처용의 마누라 바람피우고 있다. ‘가리 네히어라’가 실증하고 있다. 현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 남편 처용의 다음 행동은 상상을 초월한 부처님 머리 위에 있다. 춤을 춘다. 춤추며 하는 말씀도 가히 예수님 가르침 위다. 둘흔 내해엇고 둘은 뉘해언고? 더욱이 관전평은 더 기가 막히다. 본 내해다마 아 엇디릿고.(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향가는 지혜의 바다가 아닐 수 없다.  이 노래는 사귀를 물리치고 복을 비는 굿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본다. 처용이라는 신격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이 역신의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을 물리치는 과정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굿이 나라의 안녕을 비는 국가적 행사로 치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고등학교 고전과목 시험을 볼 때 이 향가가 나온 적이 있었다. <찬기파랑가> 잊혀지지 않는다. 咽嗚爾處米/열치매/(구름을) 열어 젖히니까 露曉邪隱月羅理/나토얀 달이/나타난 달아,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핸구름 조초 떠나간 안디하/흰 구름을 뒤따라서 떠 가는 것이 아니냐? 沙是八陵隱汀理也中/새파란 나리여해/새파란 시냇물에 耆郞矣貌史是史藪邪/기랑애 즈시 이슈라/기랑의 모습이 어리도다. 逸烏川理叱積惡尸/일로 나리ㅅ 재벽해/이로부터 냇가 조약돌에 郞也持以支如賜烏隱/낭애 디니다샤온/낭의 지니시던 心未際叱兮逐內良齊/마사매 갓흘 좇노아져/마음의 끝을 따르고 싶구나. 阿耶栢史叱枝次高支乎/아으, 잣가지 노파/아아, 잣가지 높아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서리 몯누올 화반이여/서리도 모르실 우리 화랑의 어른이시여! 향가 해석의 대가 양주동 선생님의 해석으로 본 <찬기파랑가>.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충담사가 화랑인 기파랑을 추모하여 지은 10구체 향가다. 신라의 이상적인 남성상인 기파랑의 인격을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의 정신적 숭고함을 찬양하고 있다. 언제 나는 이 고전의 향기를 카페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작설차를 님과 함께 마주 앉아 마시면서 고전의 향기를 그윽하게 음미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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