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 살면 뭐가 제일 좋니?” “글······쎄? 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다는 것.” 친구는 큰소리로 웃었다. 바람이 좋다는 말을 농담이라 여겼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다. 천지가 기운을 내뿜을 때, 숨을 토해낼 때 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러기에 곳곳마다 천지의 숨이 다르다. 바람의 맛이 다르다. 나는 유독 겨울바람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함양의 겨울바람이 제일 좋다. 왜일까. 아마 정자(亭子)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되면 자주 정자를 찾아 다녔다.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정자 근처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사라진다. 오롯이 혼자서 정자를 차지 할 수 있다. 오래된 정자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나를 오래된 풍경 속으로 데려다 줄 것 같았다. 함양에는 누각과 정자가 많다. 특히 서하면에 있는 화림동 계곡에는 팔정팔담(八潭八亭)이 있었다고 한다. 여덟 개의 담이 있고 그곳에 여덟 개의 정자가 지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몇 개의 정자만 남아있다. 그 중의 하나가 동호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이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 그곳을 찾았다. 동호정은 동호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이 만든 정자이다. 장만리 선생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웠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서하면에 내려와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선생이 즐겨 찾았던 그 물가에 9대손인 장재헌이 중심이 되어 동호정을 만들었다. 동호정은 널따란 천연의 너럭바위 위에 초석을 사용하지 않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를 사용하였고 누하주(樓下柱)는 직경이 큰 재목을 틀어지거나 울퉁불퉁한 채로 대강 다듬어 사용하였다. 마루위의 기둥은 하부에 4각형으로 모를 줄인 초석형태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4면의 추녀 끝부분에는 활주를 세워 건물의 안정감을 높였고 기둥위에는 2익공계의 공포로 장식을 하였다. 겹처마에 팔작지붕형식이었다. 그리고 건물은 화려하게 단청을 입혔다. 대들보에는 연화머리초가 그려졌고 중간에는 호랑이가 별지화로 그려졌다. 별지화는 목조건축물의 창방, 평방 등의 큰 부재 양끝에 머리초를 넣고 그 사이의 공간에 회화적인 수법으로 그린 장식화이다. 별지화······, 참 고운 이름이다. 별지화는 도식화된 문양과는 다르게 양념처럼 들어가는 그림인 것이다. 충량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었다. 정자 앞 계곡에는 해를 가릴만한 큰 바위 차일암(遮日岩)이 섬처럼 놓여 있었다. 겨울이라 계곡물은 군데군데 고여 있을 뿐 흐리지 않았다. 계곡도 겨울잠을 자고 정자의 용들도 겨울잠을 자는 듯 했다. 그런데 계곡 건너 숲이 수런거렸다. 나뭇가지들이 허공에서 작은 음표 마냥 춤을 추었다. 모두가 잠들이 있는 겨울의 풍경 속에 바람만이 홀로 깨어있었다. 바람은 휘익휘익 높은음을 내며 사과나무를 흔들고 소나무를 흔들고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슴 깊이 숨어있던 풍경 속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젊은 시절 단청을 그리며 살았다. 그것은 십 수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퇴색된 별지화처럼 기억 속에 곱게 남아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옛 서원 혹은 절집에서 오방색이 곱게 퇴색된 단청을 만날 때는 심장 속으로 어떤 아련함이 흘렀다. 퇴색된 단청에서 푸른 열정으로 타올랐던 꿈이, 청춘이 환영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고는 했다. 인생이란 얄궂다. 그렇게 계획을 짜고, 시간을 투자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 때로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가 많다. 어느 순간 시간은 저절로 흘러가 버린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다 헛것이었을까. 아니다. 비록 최선을 다하지 않았더라도, 순간순간 나름대로 성심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후회가 없는 삶이라면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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