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귀농귀촌이 팍팍한 삶에 찌든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법으로 주목 받으며 도시에서 농촌으로 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빨라진 정년에 반해 길어진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고자 하는 욕망과 농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우리나라 국민 중 35세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노후를 어디에서 보내겠느냐고 질문한 결과 67%가 ‘농촌에서 보내고 싶다’라고 답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1955~1963)의 은퇴가 본격화된 지난 2009년부터 귀농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 경제적 삶의 여유 속에 전원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인해 노동력 확보에 겪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들이 새로운 활력소로 다가오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다양한 혜택을 통해 이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경남도를 비롯한 전국의 농촌지역 지자체는 귀농귀촌을 새로운 정책으로 설정하고 많은 지원책을 마련, 도시민 유치에 힘쓰고 있다. 함양군도 귀농귀촌 정착에 필요한 지원사업 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이 귀농 전 농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귀농귀촌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함양군의 귀농귀촌 정책과 지역의 성공한 귀농인들의 노하우는 물론 다른 지자체의 정책을 살펴보며 군의 정책 방향을 점검하려 한다.<편집자 주> 귀농인의 천국 전북 고창군 귀농 귀촌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 이들은 전북 고창군의 귀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봤을 것이다. ‘대한민국 귀농 1번지 고창군’. 귀농 귀촌 하면 고창군이 떠오를 만큼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관심은 물론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며 도시민들을 유혹했다. 고창군은 지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2743가구 5680명의 귀농귀촌 인구를 자랑한다. 함양군이 이 시기 800가구가 조금 넘는 귀농귀촌 인구가 정책한 것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숫자다. 지난 2013년 대한민국 귀농귀촌 창업박람회 귀농귀촌 최우수 지자체상 2년 연속 수상과 2013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귀농귀촌도시 부문 대상 수상 등 최고의 귀농귀촌분야 수상을 독점하면서 대한민국 귀농귀촌 1번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민선 6기 들어선 고창군은 숫자 개념의 귀농귀촌 1등을 넘어 이제는 귀농귀촌의 내실까지 다지면 진정한 1등을 꿈꾸고 있다. 무엇인가 특별함이 있는 고창군 귀농·귀촌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최적지로 고창군을 선택하는 도시민들. 그들이 고창군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고창군은 전북의 최남단지역으로 산과 바다, 그리고 비옥한 땅을 가진 천혜의 고장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사람과 자연이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국내 최초로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최상의 삶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농지 면적 중 대부분이 밭으로 고소득 밭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환경도 갖췄다. 이로 인해 귀농인들은 복분자, 수박, 고추, 고구마 등 지역의 대표 농산물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작물에 도전할 수 있다. 고창군의 귀농·귀촌 8년 정책 고창군이 귀농 귀촌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은 8년이 넘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관심조차 없던 시기부터 미래를 준비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고창군의 귀농귀촌 인구는 지난해까지 2743가구 5680명으로 전국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난해 인구 6만201명을 기록하고 있는 고창군은 도시민 유치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매년 2500여명이 감소했으나 지금은 자연적 감소보다는 소폭의 오름세로 돌아섰다.지난 2007년 85가구, 2008년 81가구, 2009년 145가구, 2010년 106가구 등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이던 귀농귀촌 인구는 2011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귀농귀촌 붐이 일면서 2011년 494가구, 2012년 787가구, 지난해에는 1045가구가 제2의 정착지로 고창을 택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고창군 귀농귀촌 인구가 함양군의 지난 8년간의 전체 귀농 인구를 상회하고 있다. 귀농·귀촌 인구의 연령대도 40대가 29.3%, 50대 25.5%, 30대 20.1% 등 비교적 젊은 50대 이하의 비중이 82%를 차지한다. 노후를 위한 귀촌 보다는 귀농 인구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창군은 이러한 유치 실적에 머무르지 않고 2017년까지 귀농귀촌 1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창군의 귀농귀촌 다양한 지원책 고창군은 지난 2007년 전북지역 최초로 귀농귀촌 지원조례를 제정해 수요자 중심 즉 ‘창의적이며 고유한 고창스타일’로 체계적인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이전인 2007년부터 도시민 유치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고창군은 연속 3번의 선정되며 타 지자체보다 월등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고창군은 영농정착금 지원, 농가주택 수리비 지원, 집들이 지원, 농업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 귀농귀촌학교 운영, 선도농가 멘토 소개, 체제형 체험둥지 지원, 농기계 임대, 자녀 학자금, 안전보험 지원, 농가도우미, 영농도우미, 농지구입자금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특히 이 중에서도 귀농귀촌 학교는 여타 지자체의 모범이 된다. 고창군은 2012년 창조지역사업에 선정되면서 폐교를 리모델링한 고창군귀농귀촌학교가 지난해 새롭게 선보였다. 초보 귀농인의 지속적인 소득창출과 안정적인 조기 정착을 지원하는 이곳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과 새내기 귀농귀촌인들의 배움의 장이 되고 있다. 고창군의 성공적인 귀농귀촌 고창군에는 하루 3~4 가구가 귀농귀촌의 문을 두드린다. 고창군의 귀농귀촌 창구는 귀농귀촌T/F팀이 전담한다. 지난 2012년 3월 신설된 귀농귀촌T/F팀은 계장 1명, 농촌지도사 1명, 행정8급 1명, 시설직 1명을 비롯해 전문 상담사 2명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된다. 이곳에서 도시민 상담에서부터 영농지도, 그리고 사후 관리까지 이뤄진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겨우 팀을 유지하거나 아예 없는 반면 고창군에서는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귀농귀촌인들의 모임인 귀농귀촌협의회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도시민 유치의 선봉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해 활동하고 있는 협의회는 정회원만 800명 규모로 귀농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협의회는 귀농귀촌학교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며 그들이 앞서 터득했던 다양한 귀농귀촌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전달함으로써 예비 귀농들의 정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T/F팀과 협의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T/F팀이 행·재정적 지원을 한다면 협의회는 실질적인 귀농 귀촌인과의 접촉과 빠른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다. T/F팀은 조만간 ‘과’ 단위의 확대 개편을 통해 그동안 유치에만 힘을 쏟았다면 향후 정착 이후의 사후 관리를 통해 완벽한 귀농귀촌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T/F팀 관계자는 “고창군은 귀농귀촌사업을 시작한지가 8년이 넘어 지금까지 정착하신 분들의 ‘입소문 마케팅’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도시민 유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제는 유치와 함께 사후 관리에도 행정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어려움 딛고 귀농의 꿈이 주렁주렁 송인보 박명자 부부의 고창 담바우농장 “그래도 귀농의 꿈이 있기에 행복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귀농 4년차인 고창 담바우농장 송인보 박명자 부부. 부부가 함께 일구는 농장에는 귀농의 꿈, 희망의 꿈을 보여주듯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토박이 서울사람인 이들 부부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지난 2011년 4월. 사업을 하던 부부는 예전부터 꿈꿔오던 귀농을 실행에 옮긴다. 이들 부부도 귀농 전 여느 귀농인들과 비슷하게 정착지를 물색하며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보고, 박람회에 나가보기도 했다. 고창군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송인보씨는 첫 번째로 산과 바다, 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환경, 다음으로 여타 시군에 비해 싼 농지가격, 그리고 잘 준비된 귀농인들을 위한 농업 관련 기술교육과 프로그램을 꼽았다. 정작 귀농을 결심하고 고창으로 내려왔지만 사정은 녹녹치 않았다. 처음에는 한달 10만원짜리 농가주택을 임대해 그곳에서 생활하며 귀농정보와 농사기술들을 익혔다. 용역시장에도 나가보고 이것저것 잡다한 일들은 물론 주변의 농사일을 거들며 농사기술을 배우며 시골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농지를 구입하고 자신이 원하는 작물을 심을 수 있었다. 심원면 담암마을에 3000평의 농지를 구입해 집을 짓고, 포도와 복숭아를 심었다. 포도농사를 시작한 것은 뒤에서 보살펴준 멘토의 힘이 컸다. 그는 “농지를 구입하고 작물을 선택할 당시 군내에 농사를 잘 짓는 분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곳에 적당한 작물이 무엇인지, 농사는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포도를 심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멘토의 가르침 속에 친환경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포도가 올해 첫 수확을 기다린다. 좋은 멘토 선생님을 만난 것에 대해 친환경 재배는 힘들다. 농약 한번이면 끝날 일들이 수십 수백 번의 손길이 가야만 제대로 열매를 맺는다. 힘든 가운데서도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는 “꿈을 가지고 있으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한 만큼의 보람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가 열렸고, 포도도 조만간 수확에 들어간다. 친환경으로 재배하다보니 손이 많이 가지만 시설하우스 속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를 보며 행복에 젖는다. 그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첫째로 집을 먼저 사지 말라고 주문했다. 돈을 들여 집을 짓고 나면 자금 부족으로 농사를 지을 여건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재배 작물에 대해 신중을 기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작지만 강한 농업인 ‘강소농’으로 적당한 규모의 농업을 통해 보다 많은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송인보씨는 “아직까지는 진행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수확을 하는 단계일 뿐이며, 유기농 재배를 통해 믿고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나가겠습니다.”라며 꿈을 이야기했다. 글 강대용·사진 김용만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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