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단어만으로도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부산으로 경향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고향을 떠올리면 늘 따뜻하고 그리운 곳이 바로 고향일 것이다. 홀로 남겨진 타향살이의 적적함이나 애달픔을 풀고자 고향 사람들을 찾아 모인 단체가 바로 향우회다. 그런 의미에서 향우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탄생된 향우회는 점차 그 기능을 확대 발전시켜 이제는 고향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일에 그치지 않고 고향 돕기 등 고향 발전을 위한 큰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향우회가 많다. 함양의 아들 딸들이 모여 만든 함양향우회. 재경, 부산, 대구, 창원, 김해, 울산, 진주, 양산 향우회를 고향 향우들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인터뷰> ‘함양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도명안 재 대구 함양군향우회장 “함양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도명안 재 대구 함양군향우회 회장과 나눈 첫 인사말이다. 함양에서 가장 가까운 광역시인 대구시는 차량으로 한시간 거리에 있으면서도 조금은 먼 곳으로 느낀다. 그곳에서 생활 터전을 일구고 고향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재 대구 함양군향우회. 지난 2012년부터 대구향우회를 이끌고 있는 도명안 회장에게는 향우들을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는 기쁜 일이다.   가까우면서도 먼 도시 대구에서 자랑스러운 함양인 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도명안 회장. 재 대구 함양군향우회를 이끌며 그가 느끼는 향우와 향우회에 들어봤다. 함양 군민과 향우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고향 함양은 대학자가 배출될 수밖에 없는 필봉산이 있는가 하면 무관이 배출되는 남산의 당그레산도 있습니다. 어느 지역보다 우리의 고향 함양은 산새가 우람하고 살이 찐 모습으로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음으로 인한 우리가 다 알 수 있듯이 대학자 문관, 무관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함양인들은 이같은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타지에서나마 열심히 함양 발전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함양인이라는 큰 자긍심과 애향심으로 함께 뭉쳐 몸은 멀리 있지만 항상 고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생활은 어떠신지? 저는 대구에 온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제 고향은 함양읍 하동3구(지금의 용평리)로 함양중학교를 17회로 졸업한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대구에 터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조금은 생소한 수족관 용품 도매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저의 사무실을 대구향우회 연락사무소로 구축했습니다. 그동안 대구에 거주하는 향우들이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무실이 갖춰지지 않았었는데 연락사무소를 통해 다양한 정보 교환은 물론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재대구ㅤ함양양군향우회를 어떻게 이끌고 계신지? 대구가 서울, 부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도시에 들어가는데도 타 지역에 비해 향우들의 숫자가 적은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적은 힘이라도 똘똘 뭉쳐 함양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대구향우회의 연락사무소를 만들어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향우들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향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을 개방해 놓고 있습니다. 향우회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향우들을 찾아 향우회의 인원을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향우회는? 향우회에 대한 열정으로 창립 초기부터 향우회에 참여해 왔습니다. 향우회에 참여해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을 나누고, 서로 사업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는 등 친목을 다질 수 있습니다. 타지에 나와서 생활하다보면 타지 사람들보다는 고향 사람이 더욱 가깝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향우회에 나오면서 예전 함양에 살 당시 바로 옆집에 사시던 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함양이라는 테두리가 있었기 때문에 정이 가고 친근해 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구향우회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어릴적 청운의 꿈을 품고 타지로 나간 분들이 지금의 향우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대구는 당시 함양에서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거리적으로는 가까울지 몰라도 교통편이 불편했지요.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향우들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산업시설도 타 대도시에 비해 크게 발전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88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함양에서 한시간 거리로 가까워지고 많은 향우들이 대구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시던 향우분들이 지난 1991년 하덕성 초대 회장을 주축으로 향우회를 결성해 단결된 모습을 보이며 향우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젊은 향우들의 참여률은 높습니까? 향우회 전체 인원에 비해 젊은층, 40~50대의 참여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30대 후반 향우도 있을 정도로 많이 참여하지만, 전체적인 향우회 인원이 적다보니 상당히 어려운 편입니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아버지 고향’이라고 향우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함양군민 및 향우들에게 한말씀 하신다면? 지난 선거부정으로 인해 향우들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선거 이후 조금씩 물고 늘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선거에 끼끗하게 승복하고 함양군의 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합니다. 결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번만큼은 깨끗이 승복하고 함양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아 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대구향우회도 함양의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재대구향우회 우리나라 제3의 도시 대구. 그곳에서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향우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재 대구함양군향우회. 지난 7월22일 재대구향우회의 취재차 방문한 자리에는 역대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들이 나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대구향우회 도명안 회장을 비롯해 서점석 고문, 서정돌 전회장, 권충현 수석부회장, 정기호 부회장, 정인상 감사, 김판곤 사무국장, 이상림 본지 대구지사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한 이들은 그동안 서로의 근황과 다양한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다양한 향우회 운영 방안 등에 대해 서로 의논을 주고받으며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7월31일부터 일주일간 개최 예정인 산삼축제 참여 인원과 이동 방법 등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함양 향우들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991년 7월 발족한 재 대구함양군향우회. 대구향우회는 20여년 동안 6명의 회장들을 구심점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며 고향 함양의 향수를 생각한다. 대구향우회는 제1대 하덕성 초대회장을 필두로 제2대 박창원 회장, 3대 홍종만 회장, 4대 서정돌 회장, 5대 강기상 회장, 6대 도명안 회장에 이르기까지 20여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고향 함양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또 고문으로는 2대 박창원 회장과 김병옥·노성자씨가 맡고 있으며, 수석부회장에 권충현씨, 부회장에는 정기호·신원옥·마현욱·신영미·홍갑득·조옥순·이현식·강일희·김종수·조동현·노상진씨가 수고를 하고 있다. 서점석·정인상 감사와 이영호 운영위원장, 궂은일을 맡아하는 김판곤 사무국장, 배종근 이사를 비롯한 이사진까지. 42명으로 구성된 이사진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총회 등 대구향우회의 큰 행사가 있으면 300여명의 향우들이 참여해 축하해 준다. 매년 정기총회를 비롯해 신년회, 송년회, 단합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모이는 향우들은 향우의 끈끈한 정을 느끼며 함양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는다.강대용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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