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호 태풍 너구리가 제주 지역에 큰 피해를 주고 일본 오키나와 해상으로 빠져나갔다. 다행히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는 태풍의 기미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진로였기 때문에 관계기관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랜 가뭄으로 비를 기다려 온 농가에서는 또 다른 고통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이미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마른장마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거의 해마다 음력 칠월 중순쯤이나 되어야 본격적인 장마가 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른장마가 계속되면서 너구리는 별다른 피해 없이 지나갔다. 태풍은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까지도 계속되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태풍이 발생할 수 있어서 혼동을 피하려고 편의상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태풍의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들은 호주의 일기예보관들이었다. 그땐 자기들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따서 태풍의 이름으로 붙였다는데, 정치가들을 비아냥거리며 놀려먹는 식으로 태풍의 진로와 피해 상황을 보도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이름이 태풍의 이름으로 대거 사용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 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예보관들은 자기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태풍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그런 연유로 1978년까지는 태풍의 이름이 여성의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여성비하가 아니냐는 반발에 부딪히면서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교대로 붙였다고 한다.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주로 북서 태평양에서 발생하는데, 1999년까지는 미국 태풍 합동경보센터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붙여왔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태풍위원회에 소속된 회원국에서 제출한 이름들이 번갈아가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태풍의 영향권에 있는 각 나라의 국민들에게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임과 동시에 태풍에 대한 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태풍위원회에 소속된 14개 국가에서는 각각 자국어로 된 10개의 태풍 이름을 제출한 바 있다. 이렇게 모인 140개의 태풍 이름을 28개씩 5개 조로 나누어서 1조부터 5조까지 차례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태풍은 30여 차례이므로 5년 정도가 지나면 다시 처음 이름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태풍의 이름은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이다. 북한에서도 ‘기러기` 등 10개의 이름을 제출했기 때문에 가끔 한글로 된 태풍 이름을 듣게 된다. 또한, 태풍은 소형, 중형, 대형으로 분류되며, 어떤 태풍은 발생 즉시 소멸하는 경우도 있어서 우리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지는 이름도 꽤 많다.그러고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반기문과 같이 누구나 다 아는 이름도 있지만, 조한우, 이애성, 조예상, 조혜상처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훨씬 더 많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은 무명으로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소형 태풍처럼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날 중형 태풍이나 대형 태풍으로 발전해서 그 위력을 세계만방에 떨침으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기도 한다. 고 이주일 씨를 대표적인 인물로 들 수 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세간에 유행어로 퍼뜨렸던 이주일 씨는 그의 말처럼 정말 못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명 연예인으로서 유랑극단이나 다를 바 없는 밤무대를 전전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물론 그가 겪었던 무명시절의 일화들을 들어보면,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제8호 태풍 너구리를 보내면서 앞에서 언급한 필자의 이름과 함께 내 아내와 두 아들의 이름도 언젠가는 하늘의 별처럼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어쭙잖은 기도를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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