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비가 요란하게 내립니다. 뇌성도 쿵꽝 거리고 번개도 번쩍거립니다. 마치 하늘에서 전쟁이 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했는데 비가 내리니 고마운 일입니다. 허공은 시끄럽지만 비가 오는 날은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따뜻한 찻잔을 들고 창밖을 보니 무연히 아버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아버님 지난 겨울 휴천면 목현리를 다녀왔습니다. 오래전 그곳을 ‘나무골’이라 불렸지요. 지금도 노인들은 나무골이라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고 하더군요. ‘나무골’ 하고 입술사이로 소리를 내보면 하오의 정적이 물처럼 고여 있고 파란 풀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손짓하는 듯한 푸른 풍경이 그려집니다. 그곳에는 천연기념물 제358호인 늙은 소나무가 있습니다. 도로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냇가에 외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소나무의 종류 중 흔치 않은 반송으로 그 모양이 아름다워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도 합니다. 약 300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진양 정씨 학산공이 심었다는 전설도 한줄 있습니다.오래 살았으니 허리가 꼬부랑하니 굽었냐구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꼿꼿하니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받치고 있습니다. 높이 13.1m, 둘레 4.5m의 크기로 가지가 밑 부분에서 아홉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그 가지 때문에 구송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하지만 그 중 2개는 죽고 7개의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 아홉 개의 가지와 살아남은 일곱 개의 가지 때문이었겠지요. 처음 구송을 봤을 때 아버님의 선한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긴 세월의 삭풍을 모두 삭힌 안타까운 웃음이었지요.아버님, 아버님은 9남매를 두셨지요. 한 뿌리에서 나온 아홉 개의 가지였습니다. 가지 일곱은 아버님의 그늘 밑에서 잘 자라 주었지요. 하지만 두 가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조차 모른 채 평생을 살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하며 가슴속에 꺼먼 숯을 안고 사셨지요. 말로만 듣던  ‘남북 이산가족’이 바로 아버님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그나마 이산가족 상봉으로 두 딸과 재회를 하고 마지막 숨을 내려 놓으셨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아버님 자식을 가슴속에 묻는 다는 것, 당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고통입니다. 요즘 하늘 밑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버님도 아시는지요. ‘세월호 사건’ 말입니다. 제대로 꿈도 펴보지 못한 어린 생명들이 저 먼 곳,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미안해 사람들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날만 새면 혹시나 누가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사람들은 눈을 TV에 모으며 지냈습니다. 벌써 두 달도 훨씬 지난 지금 업친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일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GOP 총기사고’말입니다. 잊혀질만하면 터지는 군대 사고였습니다. 그 같은 일들이 자고나면 사라지는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때로 살아가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냥 넋을 놓고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산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삶은 명멸(明滅)합니다. 모질었던 아버님의 삶도 소리 없이 타올랐다가 꺼져버린 불꽃의 재처럼 고요히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명(明)과 멸(滅)하는 사이에는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할 수 없는 아픔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려움에도 삶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 아무리 아프고 신산해도 뒤돌아보면 산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전화벌이 울리네요. 누군가 나를 찾는 모양입니다. 이제 그만 작별의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계신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라며 그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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