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고통스럽다. 이젠 재잘거리던 여학생들의 웃음소리와 털털한 썩소를 날리던 남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심장이 먹먹하고 눈이 뻑뻑하고 코가 시큰거린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제주도를 향해 항해하던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배 안에는 476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이미 300여명의 학생과 일반인들이 실종 상태이거나 이미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이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살아오면서 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며 살아왔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서해 페리호가 가라앉았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매일 눈물을 흘리지 않고 넘어간 일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동안 배 침몰을 다룬 허리우드 영화라든지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을 보면 헌신적인 선장들과 선원들의 목숨을 건 구조로 생명을 건진 승객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적인 구조를 뒤로 한 채 그들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릴 줄 아는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세상이 생각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하려고는 좀처럼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나의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담보를 선뜻 내주며 그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 생명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분의(스페어) 타이어처럼 사용하다가 닳아 버리면 새 것으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법이다. 내가 죽어져 사라져 버리면 세상도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선뜻 무모한 행동을 함부로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하며 하고자 하는 일에 제한을 두며 거리를 재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시늉만 하려 한다. 하나의 씨앗이 여기 있다. 이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땅과 하나가 되어 동화되지 못하면 그 씨앗이 움트고 자라 나무가 되어 그 나무에 달릴 수천 개의 열매가 달리는 기쁨을 결코 맛보지 못한다. 그 씨앗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그 몸이 두 동강이 나고 갈라지는 고통과 그 사이에서 솟아나는 새하얗고 가느다란 뿌리를 차갑고 낯설은 땅속에 내리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위대한 기적의 기쁨을 결코 맛볼 수 없다. 여기 희생적으로 자기 하나의 생명을 주어 살린 위대한 슈퍼맨(우먼)들이 있다. 누구는 도망하고 피하였지만 그들은 죽음이라는 골리앗과 당당히 맞서서 싸웠다. 결국, 그들은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들을 거두어 들였다. 그들의 죽음과 희생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로인해 그 나무에 달린 귀한 열매들도 희생적인 그 나무의 헌신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똑같은 그 모습으로 복제되어 전국으로 전 세계로 넓게 넓게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르칠 것이다. 현재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그들의 사랑을 실천한 그 사랑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가 걸은 사랑의 실천을 나도 실천하겠노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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