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후4시에 함양 민들레 교회당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예배모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모임을 기다리면서 주중에도 모임을 확인하며 몇 번씩 전화로 확인할 때도 있고 모임에 오지 못할 때는 못 온다고 꼭 연락한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 듣고 게임이나 색칠공부를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이지만 서로를 인정하며 위로하고 힘을 얻게 되는 것 같고 모임을 인도하는 필자 역시 그 분들을 통하여 감동을 받고 힘을 얻을 때가 많다. 지난 화요일에 병곡에 사는 지적장애를 가진 한 형제는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혼자 계셔서 예배만 드리고 식사는 하지 않고 가야 한다.”고 하기에 예배 후 혼자 먼저 태워 주었다. 백전 벚꽃 길을 지나면서 지난주만 해도 화사하게 피어있던 꽃이 다 졌기에 무심코 “벚꽃이 다 졌네요 꽃이 어디로 갔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청년이 “꽃은 마음에 떨어 졌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무심코 던진 말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으면서 정말 그 말이 참으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꽃은 마음에 떨어졌어요”라는 말이 되새겨졌다. 널리 애송하는 시 ‘꽃’에서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화려한 벚꽃. 비단 벚꽃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준비하여 피운 다른 모든 꽃들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꽃들이 우리의 마음에 떨어진다면 우리의 마음이 보다 아름답고 향기를 내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꽃들의 계절이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소식들이 들린다. 새어머니에 의해 죽임당한 아이들. 아버지에 의해 살해된 아이.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 그들 모두의 마음에 꽃이 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지나간 자리에 계속해서 다른 꽃이 자리를 차지하고 내어준다. 주위에는 유채꽃. 연산홍. 라일락…… 화려하고 향기가 진한 꽃에도 감동을 받지만 아주 작은 이름 모를 꽃에도 진한 감동을 받는다. “꽃은 마음에 떨어졌어요” 피고 지는 많은 꽃들을 보면서 이 말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시간도 그 청년을 생각하며 내 마음을 돌아본다. 내 마음에는 꽃이 얼마나 떨어지고 있는가? 그 꽃을 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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