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태어난 아기는 한없이 무기력한 존재로써 극히 본능적인 것만 간신히 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어야 하는 절대 공급자입니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아기의 하인이 되고 맙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무조건 아기에게 집중하면서 양육합니다. 그렇게 키운 아이가 쑥쑥 자라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그때부터 엄마는 아이에게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서 자립심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해서 아이를 품안에 끌어안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더 나아가 소위 아이의 하인 노릇을 자청해서 계속 합니다. 그것만이 아이가 상처 받지 않고 위험에 빠지지도 않으며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랄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건전하지 못한 의존관계가 형성되어 갑니다. 그런 의존관계로 계속 성장하여 청년이 된 사람은 그 때까지도 나약하고 무기력한 어린 아이의 옷을 벗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합니다. 결국 답답한 어른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무기력한 존재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개인주의적인 이기적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사회성도 떨어지고 책임감이 결여된 무기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한 때 ‘마마보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오직 엄마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마마보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책임감 있고 당당한 성인이 되게 하려면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요? 어릴 때부터 책임지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단호하게 시켜야 합니다. 무조건 도와주고 대신 해주는 것이 사랑이요 아끼는 마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조건 일방적으로 돕는 것은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없이 아이의 시중드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되면 그 아이는 남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못하는 사회의 부적격자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지역아동센터에는 5명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그 아이들에게 식사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심한 편식과 올바른 식사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식단만 제공한다면 교사들도. 어린아이들도 편하고 좋겠지만 그 결과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에 스스로 편식을 버리고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 주기 위해서 지도하고 있는데 점점 발전하고 있어서 희망이 보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건전하고 당당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과잉보호도 지나친 무관심도 아닌 자립심을 길러주는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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