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지리산 깊숙한 골짜기까지 진달래꽃을 피워놓았다. 온 산이 붉은 진달래 물결로 일렁인다. 그 꽃물결 속에 도솔암이 있다. 도솔암 뜰 가득 햇살이 쌓인다. 진돌이는 봄볕에 낮잠을 자다가 기지개를 켰다. ‘아니. 채완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진돌이는 고개를 쭉 빼며 법당 안을 보았다. 채완이가 절을 하고 있다. 스님은 채완이가 잘못할 때마다 108배를 시켰다. 관음보살님이 절을 하고 있는 채완이를 바라보고 있다. “관음보살님 채완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진돌이는 목에 묻은 먼지를 털며 물었다. 관음보살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 눈을 맞추어야 말씀을 하시지.’ 진돌이는 법당 가까이로 다가가며 꼬리를 흔들었다. 관음보살님 눈은 마음의 창이었다. 그래서 눈이 마주치면 눈빛은 말이 되었다. “멍멍!” 진돌이는 채완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었다. “오늘은 잘못한 게 아니라 ‘금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란다.” “금어가 뭔데요?” “이 절 노스님처럼 불화를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지.” 진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채완이가 이젠 제법이군.’ 진돌이는 채완이가 절에 오던 그날이 떠올랐다. 채완이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불안한 모습이었다. “채완아. 스님께 이것 갖다 드리고 올 동안 이 과자 먹고 있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과자 봉지를 주셨다. “채완아. 나도 좀 줘.” 진돌이는 꼬리를 살랑이며 채완이 곁으로 다가갔다. 채완이는 진돌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과자를 주었다. 처음 만났지만 채완이와 진돌이는 금방 친해졌다. 둘의 만남을 축하하듯 산새는 신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진달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벌써 산그늘이 내리고 있었다. ‘금방 온다던 엄마는 왜 안 나오실까?’ 채완이는 요사채로 들어갔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요?” 어느새 채완이의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갔다. 스님은 눈물을 글썽이는 채완이를 두 손으로 보듬으며 말했다.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하면 오실 거야.” “그림을요?” 스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싫어요.” 채완이는 엉엉 울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울었다. 우는 채완이가 안타까워 진돌이가 끙끙거렸다. “엄마를 만나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렴.” 스님은 언제나 똑 같은 말만 했다. “그래. 스님 말이 맞아.” 진돌이는 스님 성질을 잘 알고 멍멍 짖었다. 채완이는 진돌이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면 진돌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리자.’ 채완이는 그림을 그려야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마침내 붓을 잡았다. 붓 끝에 먹물을 묻혀 선부터 그렸다. 선은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선을 그리고 또 그렸다. 엄마가 그리우면 그림을 그렸다. 항상 진돌이가 곁을 지켜주었다. 붓으로 그리는 그림은 삐뚤삐뚤했다. 아무리 그려도 달라지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붓을 던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스님은 백팔배를 시키셨다. (계속) * 마천면 삼정리에 있은 도솔암(兜率庵)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504호이다. 이글은 스토리텔링형식의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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