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화림동계곡 선비문화 탐방로 사람들은 도시에 살면서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한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항상 허둥거리며 산다. 자신을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나를 뒤돌아보고 나를 찾고 싶다면 선비의 고장 함양으로 떠나보자. 느림이 아니라 여유를 찾아서. 화림동계곡 선비문화 탐방로를 걸으면 내가 보인다.  재야의 선비를 길러낸 함양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으로 불릴 만큼 예부터 묵향의 꽃을 피워 온 선비와 풍류의 고장이다. 안동은 집권세력을 배출했고 함양은 재야의 선비를 길러냈다. 출사에 뜻이 없거나 낙향한 선비들이 함양에 살았다. 그래서 함양에는 수려한 산천에 유서 깊은 향교. 서원. 누각. 정자가 많다. 함양에는 8경. 8품. 8미가 있는 문화관광의 고장이다. 함양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7m 남덕유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이룬 계곡. 하동과 함양에서 과거 길에 나선 선비가 처음 만나는 육십령 고개를 앞두고 한숨 돌리며 쉬어가는 곳. 너른 암반과 기암괴석이 많아 다른 계곡이 넘보지 못할 풍류를 즐기기 좋은 계곡. 이름도 선비문화 탐방로다. 여덟 개의 담 옆에 여덟 개의 정자가 있어 주위 나무와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진 계곡. 그래서 팔담팔정이다. 지금은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심원정 네 개만 남아있다. 거연정부터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터까지 6.2km를 걷는다. 군자정은 안의면과 육십령으로 이어지는 26번 도로 육십령로 밑에 있어 접근하기가 쉽고 주택과 가까이 있다. 조선의 학자 일두 정여창(1450∼1504)의 처가가 있는 마을에 있다. 1802년에 정여창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고 ‘군자가 머무르는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했다. 군자정 위에 있는 봉전교를 건너면서 위쪽을 바라보면 계곡 가운데 정자가 보인다. 거연정(居然亭)이다.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가히 세상을 잊게 하는 곳이다.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중 자연과 나와 샘과 돌이 같이 거한다는 거연아천석(居然俄泉石)에서 따왔다. 정자는 계곡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거연정은 아예 계곡의 바위섬 안에 앉아 있어 구름다리 화림교로 건너가야 한다. 거연정은 기암괴석 위에 올려놓은 듯 떠 있고 앞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소가 있어 한 폭의 수채화다. 굽이쳐 흘러내린 물이 잠시 쉬어 가도 좋은 곳이다. 옛 선비들은 정자 앞에 흐르는 물을 보고 방화수류천(訪花隨柳川)이라 불렀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간다.’는 뜻이다. 거연정에 앉아 흐르는 계곡물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떠내려가는 버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름 그대로 흐르는 물 가운데 바위 위에 돌과 물과 바람 속 자연에 거하게 된다. 재야의 선비를 길러낸 성향이 자연을 감상하기 좋은 곳에서 자연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선비의 위상을 본다. 거연정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 선생이 서산서원을 짓고 그 옆에 억새로 지었다.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에 타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그 후 화림재선생의 후손이 억새정자를 철거하고 서원의 재목을 사용하여 정자를 다시 지었다. 거연정을 뒤로하고 군자정 건너에 계곡을 따라 목재로 잘 만들어 놓은 길을 계곡의 물소리 바람 소리와 같이 간다. 사유지에 있는 영귀정을 지나 나무데크가 끝날 즈음이면 연리목을 닮은 나무를 만난다. 서로 다른 나무 몸통이 결합한 함양 상림의 천년의 약속 사랑 나무에는 비길 바 못 되지만 뿌리는 하나같은데 가지 하나가 자기 몸을 무슨 연유로 이렇게 감싸고 도는지. 계속 걸으면 아스팔트 도로를 잠시 거쳐서 논두렁 밭두렁. 사과나무밭도 만난다. 붉은 홍조를 띠고 있는 사과를 따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청렴결백 선비의 자존심을 지킨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술 마시고 계곡의 바위와 흐르는 물소리를 벗 삼아 걷는다. 물 건너 바위 위에 의주 몽진 때 선조를 업고 의주에서 신의주까지 수십 리를 달렸다는 학자 동호 장만리 선생의 호를 딴 동호정이 보인다. 후일 선조가 충절을 가상히 여겨 정려를 명하여 황산마을 입구에 정려비각이 있다. 남강천 옥녀담에 있는 동호정은 화림동계곡에 있는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정자 앞에는 해를 가릴 정도로 너른 바위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에는 노래 부르는 곳 영가대가 있고 연주하는 곳 금적암이 있고 술을 마시는 곳 차일암이 있다. 동호정에 올라 잠시 선비가 되어본다. 과거 길에 오른 선비도. 벼슬이 싫어 은일의 길에 들어선 선비도 시와 글로서 자연과 풍류를 즐겨본다. 아름다운 자연과 술과 시서를 논할 벗이 있으니 온 세상이 내 것이다. 가문의 명예와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봇짐을 메고 머나먼 한양 길에 과거시험은 잠시 잊는다. 바위 곳곳 구덩이에 술을 부어 놓고 입을 대고 마신다.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돌렸다는 포석정보다 풍류 속에서 풍류를 찾는 재야의 선비답다.   길재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자연은 그대로인데 그 선비들은 모두 어디 갔는지. 그때가 태평인지 지금이 태평인지. 그때가 태평이면 꿈에서 깨어나고 지금이 태평이면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차일암을 지나 솔밭으로 들어간다. 솔밭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소나무 곡선과 조화를 이룬다. 가을걷이를 한 논과 김장을 기다리는 배추 밭두렁을 걷는다. 이 계곡의 유일한 호성마을은 집집마다 곶감을 깎아 말리고 있다. 곶감은 말려서 감 껍질과 같이 보관하면 곶감에서 하얀 분가루가 더 잘 생긴다. 당분이다. 이듬해까지 맛있고 달게 먹을 수 있다. 호성마을을 지나면 경모정이 누워있는 바위 위에 놓여 있다. 바위의 경사에 맞춰 기둥의 높이를 달리했다. 지금 같으면 인위적으로 바닥을 평평하게 깎은 후 정자를 지었겠지만. 자연을 관리하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산청에서 호성마을로 이사를 와 후학을 가르쳤다는 계은 배상매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 경모정을 지나면 람천정이라는 정자가 언덕 위에 천하를 호령하는 듯 서 있다. 길이 멀고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꽃과 바람. 구름과 비. 그렇게 자연과 함께 간다. 걷는다고 계속 걷기만 할 필요는 없다. 걷다가 정자가 보이면 잠시 쉬어 가자. 쉬엄쉬엄 가다 보면 들판처럼 펼쳐져 있는 바위에 움푹 파인 웅덩이가 수없이 많다. 이 웅덩이에 달이 비치는 바위 못이라 하여 월연암이라 했다. 고요한 밤에 바위 못에 비친 달빛을 한 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농월정 터다.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의병을 일으켰던 지족당 박명부가 고향 함양으로 유배 왔을 때 지은 것으로 2003년도에 불타고 터만 남았다. 바로 앞 바위에 지족당 선생이 노닐던 곳(지족당장구지소)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정자에 앉아 한잔 술로 바위 못에 떠 있는 달을 희롱하는 선비의 풍류를 기대하며 이른 시일에 농월정이 복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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