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미루던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분노를 삭이거나 눈물을 참는 게 싫어서 봐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미루고 또 미루다 최근에서야 그 영화를 보았다. 내용을 알고 보는 영화이고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놈의 멍게 때문에 긴장이 되었다. 사람도 아닌 것이 주연까지는 아니고 거의 조연 같은 느낌으로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아직 공부 중인 딸아이가 취직을 한다면 친정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맛난 밥상 차려놓고 다 같이 둘러앉아 축하를 해줄 텐데 그때 멍게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때 분명 내 딸아이 아빠는 소주잔 기울이며 좋아라 할 터인데 나는 멍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사실 내가 멍게를 처음 만난 것은 멍게가 꽃밭처럼 펼쳐지는 통영은커녕 그 비슷한 근처도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 출신이니 당연히 바다에 대한 추억 하나 제대로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로는 서울의 끝자락이라 할 정릉시장의 난전에서 해삼과 함께 리어카 위에 누워있었다. 값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달라는 대로 바로 손질해서 작은 접시에 담아주는 것이었는데 내 생애 최초의 멍게들은 속살을 드러내고 멀건 초고추장에 버무려진 채로였다. 나무젓가락이 아니라 큰 옷핀을 펴서 리어카 목판 위에 쭉 꽂아놓은 것을 하나 빼들고는 해삼이나 멍게를 초고추장 속에서 골라 찍어먹어야 했던 기억이다.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고 미끈거리면서 입안에서 돌아다니는 해삼의 식감과 난생 처음 대하는 멍게의 비린한 향이 오래도록 남아 꽤 나이가 들 때까지 먹고자 하는 의욕을 내지 않게 하는 음식이었다. 멍게를 다시 먹기 시작하고 멍게를 찾아 먹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것은 통영출신의 친구 때문이다. 군침을 삼키면서 진한 사투리로 멍게타령을 하는 친구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통영 바닷가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것을 바로 먹었을 때 내 입안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다의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나는 봄이 되면 멍게 생각으로 시장엘 가거나 남쪽바다를 찾는 일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오돌토돌한 돌기가 얼마나 생동감 있게 돌출되어 있는지가 신선도를 나타내는 우렁쉥이 멍게는 얕은 바다 속 바위나 해초. 조개 등에 붙어서 산다. 미역이나 김처럼 수온이 낮을 때가 제철이 아니고 수온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이때부터 여름까지가 제철이라고 한다. 막 수확한 신선한 것의 껍질을 벗기고 그냥 제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보름쯤 삭혀 먹는 젓갈도 맛깔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비비는 것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멍게를 듬뿍 썰어 넣고 비비는 비빔밥의 맛이 최고다. 멍게비빔밥을 해 먹을 때는 산나물 등으로 비비는 비빔밥과 달리 젓가락으로 어설프게 비벼서는 제 맛이 안 난다. 숟가락을 손바닥 전체로 거꾸로 들고 싹싹 야무지게 비벼야 한다. 그래야 밥알 하나하나에 멍게와 양념이 고루 배어 그 맛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진주에 강의가 있어 갔다가 내처 통영까지 내려갔다 왔다. 며칠 전 보았던 영화 생각도 나고 해서 멍게를 한 바구니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모처럼 가족이 모여 소박하니 멍게 한 접시만 놓고 술 한 잔 했다. 달큰하니 참 좋다가 참 우울해지고 그러다 남은 멍게를 다져서 커다란 양푼에 넣고 밥과 함께 비벼 먹었다. 그러면서 나는 크라우드펀드로 모은 제작비로 개런티 없이 출연한 배우들이 보여주던 영화 속 가족으로 잠시 합류하는 착각을 했다. 남도의 봄은 쪽빛 바다 위에서 빛나던데 나는 뭔가 세상이 무서울 땐 멍게가 먹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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