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 다영이가 자기 책상 위 벽에다 학교에서 배운 붓글씨로 써 온 문구를 붙여 놓았다. 한글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란 글귀이다. 많이 들어 본 말이지만 금수강산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음에 새삼 놀랐다. 강과 산은 알겠는데 금수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국어사전을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경치가 아름다운 땅”이라고 적혀 있었고 흔히 우리나라를 일컬음이라고 했다. 온 국민이 자랑스럽게 부르는 애국가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누구나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봄이 오면 온 산을 예쁘게 단장하는 향기로운 꽃들과 초록색으로 짙게 물든 여름 산의 싱그러운 신록들. 가을의 고운 단풍. 소복이 눈이 내려 하얀 눈꽃이 핀 겨울 산의 정취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곱디고운 비단에 아름답게 수를 놓은 것 같이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시골에 내려와서 생활하게 되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성큼 눈앞에 다가온다.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의 향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모른다. 방문한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너무 좋다고 찬사를 하며 시골 풍경을 마음껏 만끽한다. 지역이름이 운곡(雲谷)인데 이름이 참으로 지역과 잘 어울린다. 이름에 걸맞게 구름의 골짜기이다.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주위 경관과 잘 어우러진 구름을 보면 어떤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가끔씩은 차에서 내려 한참동안 묵묵히 그런 광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산이 가까이 가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전과 비교해보면 경제적으로 많이 풍요로워 졌고 여러 모로 생활이 많이 편리해졌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반면에 참으로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잃었다. 그 잃은 것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우리의 자랑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우리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제법 큰 시냇가에서 수영을 하면서 그 물을 마시기도 하였다. 겨울철에 수도가 얼어붙으면 마을에 있는 도랑의 물을 길어다 밥을 해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법 깊은 산 속에 있는 졸졸 흐르는 물도 마시기에 꺼림칙하다. 주위에 있는 농약봉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냇가에서 잡아온 민물고기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요즈음은 아예 먹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쓰레기 태우는 냄새. 농약냄새. 축사에서 나는 가축분뇨 냄새로 숨쉬기가 어려울 때도 많이 있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쓰레기와 산속에는 몰래 가져다 버린 대형 가전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비가 오면 온갖 쓰레기들이 물에 둥둥 떠밀려 흘러간다. 다른 곳은 다 깨끗한데 손이 더러운 사람을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멀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라도 다 금수강산이다. 우리의 강산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산짐승과 들짐승이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다.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들도 아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산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우리 사람들의 무관심과 우리들 삶에 깊이 물든 잘못된 생활습성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일그러지게 하고 있다. 열심히 노래를 부른다고 금수강산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세월이 가면 언젠가 저절로 복원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땀을 흘려 가꾸고 지켜가야 한다.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실행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내가 몸담고 살고 있는 가까운 내 주위를 보며 아름답다고 할 때 진정한 금수강산을 노래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딸이 써 붙여 놓은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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