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역사나 지방의 지방사는 그 평가가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대나 환경. 처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는데 어느 지역에서나 그런 점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에는 무가치한 것이 어느 시대에 가서 소중한 가치를 갖는 것이 있고 어느 시대에 반역자였던 인물이 충신이나 애국자로 바뀔 수도 있다. 지방마다 인물을 보게 되면 어떤 인물은 그 고장이나 국가를 위한 공헌도 별로 없는데도 위대한 인물로 조명되고 어떤 인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지역사회를 위해 공헌이 많은데도 소홀이 취급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무인이나 천민이라고 해서 그 공적이 묵살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선인들이 높이 평가한 인물을 우리가 굳이 끌어내릴 필요는 없지만 업적이 많은데도 묻혀있거나 그 공헌을 무시당하고 소홀이 다루어진 인물은 재평가하고 그 명예를 현창할 필요성이 있고 후학의 교육에도 중요시된다고 하겠다. 그러한 인물 중의 한분이 당곡 정희보 선생이다. 함양의 지방사 교육인물을 보면 덕곡 조승숙 선생이 교수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그 제자는 몇 명밖에 전하지 않으며 김종직 선생이 4년간 함양의 후학을 가르쳐 전하는 인물들은 다 존경을 받지만 소수이며 정여창. 강익. 노진. 정수민. 권도용. 정도현 제 선생들이 후학을 가르친 흔적은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제자로 알려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당곡 정희보 선생은 자기 수양과 학문을 닦은 기간 외에는 일생을 함양의 후진양성에 몸 바쳐 영호남의 반이 그의 문인이라 하리만큼 제자가 많고 알려진 인물만도 수십 명에 이른다. 노진. 이후백. 소세양. 양희. 강익. 정복현. 조식 등 모두가 바로 배우고 반듯한 생활을 하여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다. 스승으로서 함양 역사상 누구보다도 가장 큰 업적을 남겨 훌륭한 인물(제자)들을 양성하였고 함양의 선비고장 위상을 높였으며 학문과 충.효.례의 고장으로 빛을 발하여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명성을 들어낸 것으로 사료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함양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그 공헌만큼 존경받지 못했으며 평가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당곡의 업적을 재평가하고 명예를 현창하여 존경하며 후학들에게 교훈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당곡선생을 모신 서원도 없고 사당도 없다. 아무 서원에나 모실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조촐한 사당을 마련하여 함양인들의 긍지를 높이고 교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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