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 경칩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10cm는 쌓였었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그냥 전해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봄의 기운을 이길 장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가보다. 하우스 안이 아니라도 여기저기서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자기를 쳐다보라며 갖은 아양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집의 마당 한쪽에 있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서도 머위. 산부추. 방풍. 잔대. 삽주. 움파. 더덕. 돌나물. 더덕. 도라지 등 수많은 싹들이 저마다 쑥쑥 올라오고 있으니 그것을 쳐다보는 재미 또한 꽤나 제법이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절로 퍼져 나는 것들까지 합치면 지금부터 우리 집은 야채를 사러 장에 가는 일은 거의 없을 만큼 풍성한 먹을거리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감자기 어떤 손님이 찾아와도 상에 올릴 마땅한 푸성귀들이 없어 애를 태울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양하게 올라오는 봄의 수많은 향채들 중에 으뜸을 부추로 꼽는다. 오죽하면 다산 정약용선생이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던 기간 중 아홉 계단의 채마밭을 일구면서 부추를 얻지 못한 어느 해 봄엔 탄식하며 지냈겠는가. 평균수명이 오십이 채 안 되었던 조선시대의 장수한 인물들 중 한 사람이었던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중에 직접 농사를 지어 밥상을 차려 먹으며 자신의 그런 생활을 편지로 써서 아들들에게 보냈었다 한다. 그런 영향으로 다산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를 쓰게 되었고 수백 년이 지난 현대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24절기와 함께 항상 챙기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부추는 한의학에서 구채라고 하는데 기(氣)를 북돋워 준다하여 기양초(氣陽草)라고도 부른다. 매운 맛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질이 따뜻하여 동의보감에서는 간과 신장을 이롭게 하는 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신(腎)이 허(虛)해서 오는 양기 부족이나 위가 냉해서 오는 복통(胃寒腹痛)에 효능이 있음은 물론 허리와 무릎이 시고 아픈데도 효과적이며 해독하는 작용도 뛰어나다. 그러므로 봄에 막 올라오는 부추를 잘라다가 밥상에 올린다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우리의 몸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부추의 씨도 가구자(家韭子) 또는 구채자(韭菜子)라 하여 약용으로 사용한다. 정력을 강화하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여 허리가 아픈 증상이나 무릎을 튼튼하게 만드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또 정액이나 소변이 쉽게 흘러나오는 것을 억제하는 효능도 가지고 있어서 밤에 소변이 잦거나 야뇨 증상이 있는 경우나 아랫배가 차거나 뼈가 시리고 아픈 증상에도 쓰인다.  친정어머니는 부추를 일러 게으른 사람들이 가꾸는 채소라 하신다. 특별한 농사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한 번 심어놓으면 혼자 잘 자랄 뿐 아니라 저절로 잘 퍼지기 때문이란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부추의 또 다른 이름 구채의 구(韮)는 땅에 풀이 무성하게 자란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하니 부추는 한 번 심어놓으면 혼자서도 무성하게 잘 자라는 것임을 그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집 뒤란에도 한 움큼의 부추가 자라는 통이 하나 있다. 벌써 십여 년을 방치해도 해마다 봄이 되면 삐죽삐죽 싹을 내미는데 올해도 변함없이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그저 미안하고 반갑다. 부추는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대표적인 채소다. 하지만 이른 봄. 노지에서 처음 올라오는 부추를 만나면 온전히 봄을 몸 안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부추만 먹어도 좋겠다. 혹시 달래 몇 뿌리 만나면 같이 넣고 무쳐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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