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의 청취를 느끼다 상림과의 인연은 10년 전 함양에 거주하게 된 언니의 집을 처음 방문하여 숲을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편안하고 울창하게 펼쳐진 숲의 모습에 매료되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한 이곳이 인공 숲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곳 상림을 찾아 숲의 청취를 느끼곤 한다. 상림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우리에게 풍성한 자연의 소식을 전해준다. 봄이면 온 숲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여름이면 울창한 나무 그늘과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싱그러움을 선사한다.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이면 온 숲에 피는 석산화가 주황빛을 일구고 좀 더 추운 11월 달이면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색색 낙엽의 황연을 만들어 낸다. 상림사계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사모하기에 주말마다 이 숲의 청취를 찾아 모여드는 많은 관광객 들 중의 한 사람 일 때도 있지만.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우러 숲 안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들을 만류하는 나를 보며 어느덧 함양 사람 다 된 것 같은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상림의 첫 자락에 들어서면. 세월을 이긴 나무들이 주는 숲의 또 다른 공기에 마주하게 된다. 숲의 오른쪽으로는 시내가 흐르고 둑을 따라 꽃과 조경이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다. 상림 관광 안내가 적힌 팻말을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면 큰 잔디 공터와 함께 그네와 약수터. 그리고 옛날 읍성의 남문이었던 함화루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사자머리를 타고 흘러나오는 깨끗한 약수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본격적으로 숲 안길을 따라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으로는 조각돌 발 마사지를 할 수 있는 보도블록과 왼쪽 강둑길로 갈라지는 첫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길 한 옆으로는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갈림길에 놓여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아 옆으로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를 듣노라면 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계속 이어지는 길 위에 다른 종의 두 나무가 합쳐진 연리지와 그 팻말을 볼 수 있고 이윽고 아담한 규모의 공터와 함께 이층 높이의 누각을 만나게 된다. 날씨가 좋을 때 면 이곳에 올라 가만히 숲의 청취를 느껴 봄 직 하다. 누각 뒤로는 최치원 선생의 비문이 서있어 주인처럼 숲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맞는다. 비문을 돌아 왼쪽으로 나가면 마침내 상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상림 대로를 만나게 된다. 버스 두 대는 들어 옴 직한 이 큰 흙 길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길의 양 옆을 따라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 한 듯 자연스레 줄을 지어 서 있고.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그윽하고 평안한 청취가 찾는 이로 하여금 고요히 숲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게 한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길을 따라 길게 뻗어진 파란 하늘이 한데 어우러져 여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 경관에 취해서 길을 따라 걷노라면 여기저기서 빼 꼼이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다람쥐들이 숲을 거니는 이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큰 길의 중간 즈음에 있는 마당바위가 점심 자리를 찾는 관광객들을 맞고. 맞은편에 서있는 함양 군민헌장은 자연에 대한 보존 정신과 후대에 대한 함양 군민의 배려 심을 잘 나타내 준다. 1km 즘 이어지는 대로를 지나면 바로 좁은 숲길이 이어지는데 상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자연의 멋 그대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 이곳에서. 길 가에 이어진 나무 기둥 하나에 걸 터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듣곤 한다. 하늘 높이 가지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바람이 스치며 들려주는 나뭇잎 소리와 낮고 높은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 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딱따구리가 나무에 집을 만드는 소리 등. 그저 숲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면 늘 상 머릿속에 맴돌던 무상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이내 숲이 내는 소리로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뜻밖의 멘토링- 희망을 개척하다 5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 가장 염려가 되었던 건 외국에서 자주 가던 공원과 숲에서 가지던 여유를 한없이 바빠 보이는 한국에서도 가질 수 있을 지였다. 하지만 상림을 다시 찾으면서 이러한 나의 염려는 우사였음을 알 수 있었다. 진로를 준비하는 동안 잠시 함양에 머물게 되었고. 상림을 산책하며 가지는 고요한 시간에 다시금 마음속 깊은 평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누구보다 더 값지게 상림을 누리면서 새삼 이 숲을 만든 이에 대한 감사와 궁금증이 우러나왔다. 그토록 많이 상림을 찾았었지만 늘상 지나쳐 가기만 했던 인물역사공원에 들러 처음으로 모든 동상의 비문들을 찬찬히 읽어 나갔다.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정여창. 유호인. 김종직. 박지원 등 참으로 많은 위인들과 학자들이 이곳 함양에서 나고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석의 제일 앞 중앙에는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최치원 선생은 오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꿈을 안고 귀국 하였다. 하지만 신라의 문란한 국정에 실망하고서 외지 관직으로 자처하여 나가게 되고 이곳 함양에서 홍수를 막기 위해 대관림을 조성한 것은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금. 어떻게 이곳에 대관림을 세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아 오래도록 인물역사공원에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최치원 선생은 신라의 문란한 정치인들과 퇴락한 국정에 통탄하며 일종의 도피행으로 당시 산간벽지인 이곳 함양으로 내려온다. 당나라에서 일대의 문장가로 인정을 받은 인재였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절망하며 한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절망이 오래 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정의 무능과 자신의 처지에 머물러 있던 그의 눈은 이윽고 이곳 함양 농민들이 매년 홍수 피해로 고통 받는 삶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절망과 이 땅의 고통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학자요 당시 최고의 문장가인 그가 이 땅의 백성을 위해 시작한 또 다른 개척은 붓이 아닌 호미로. 먹이 아닌 삽과 지게로 홍수가 범람하는 이곳에 숲을 세우는 것이었다. 당시 나라님도 마다하고 조정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군민의 고단한 삶에 그는 진정 이 나라 백성을 위한 일을 시작 한 것이다. 무모한 일이기도 했다. 종전에 찾아볼 수 없던 일이라 이 일의 성패를 두고 소문이 난무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 선생과 군민들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 고을과 후세를 위한 위대한 역사를 진행하고 마침내는 한국 역사 최초의 인공 숲을 완성하게 된다. 당시로는 이렇게 울창하고 위용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넓은 대지에 갓 심은 작은 나무들과 연한 가지들이었을 터. 이 역사를 시작한 최치원 선생과 군민들은 그 삶을 다하기까지도 지금의 숲다운 숲의 위용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으로 이미 보지 않았을까. 수년간 계속되는 노역으로 몸이 지칠 대로 지쳐 고단하지만. 그들의 아들 딸과 먼 후세들이 이 숲을 거닐며 감탄하고 그들의 노고와 수고에 감사하는 광경을 이미 마음으로 보고 흡족 하였으리라. 한국에 돌아 온 후 나는. 젊은 날 외국에서 시야를 넓히고 많은 경험을 쌓은 것에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더 큰 꿈을 펼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어 새롭게 주어진 이곳의 삶에 집중하지 못했다. 단순히 무거운 마음을 흘려보내려 찾았던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멘토링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최 선생이 유학 후 가졌던 절망이라는 주제에 내 마음이 맞닿아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지만. 한 번 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때는 이 숲 곳곳에 심겨진 희망과 개척의 정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길을 따라 상림의 꼭대기에 있는 물레방아 앞에 서 본다. 물레방아에서 부터 시작되는 물줄기는 온 숲을 타고 흘러 나간다. 숲을 관통하는 물줄기를 따라 옆으로 가지런히 쌓여 있는 돌담을 보며 다시금 이 숲을 세우는데 십 수 년은 족히 걸렸을 군민들과 최 선생의 노고와 희망에 대한 의지를 보게 된다. 천 년 전 함양 땅에서 시작된. 절망 중에 세워진 위대한 개척의 역사를 마주하며 나 또한 이곳에서 다시금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계획이나 꿈과는 다른 현실이라 마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또 다시 희망을 찾아 삶을 개척해 나간다면. 상림의 온 숲을 관통하고 있는 돌담처럼 작은 돌들이 쌓이고 싸여 나 또한 새롭고 위대한 물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격려 해 본다. 최치원 선생의 개척정신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계승되기를 5년 만에 상림을 찾으며 숲 주변이 놀랍도록 발전 한 것을 느낀다. 숲과 함께 길게 이어진 방대한 규모의 연지공원과. 멋지고 웅장하게 지어진 문화 회관 등의 건물들. 또한 하림 숲을 개간하여 옛 대관림의 위용을 되찾고자 하는 함양군의 의지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고운 공원은. 앞으로 더욱 발전 해 갈 상림의 명성을 내다 볼 수 있게 한다. 이와 더불어 최치원의 개척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할 만한 문화 행사 등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젊은 날의 고민을 안고 이 숲을 찾아 뜻하지 않게 좋은 멘토링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격려가 필요한 이는 다만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젊은 날의 숱한 도전과 좌절 앞에 희망과 독려가 필요한 한국의 이천만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개척을 이룰 수 있다는 이 숲이 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또한 그 정신을 기리는 장이 마련된다면 어떨까. 이 숲의 곳곳에 심기어진 옛 선조들의 위대한 개척정신을 마주 하게 된다면. 끝없이 삶을 개척하고 도전해 가야 할 다음 세대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격려가 될 것이고 더불어 그 정신이 계승되는. 훌륭한 역사 교류의 장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문화의 사람들이 자연의 순리를 이용하여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살아가는 사례들을 보지만 이렇게 자연의 순리를 바꾸어 역으로 자연을 다스려 낸 예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는 철을 따라 상림이 주는 선물에 감탄하고 즐거워한다. 이와 함께 천 년 전 이곳에 일구어진 개척과 희망에 대한 의지를 그리고 계승 해 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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