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면 운곡리에 있는 은행나무를 찾았다. 천연기념물 제 406호였다. 누구는 팔백년을 살았다고 했고. 또 누구는 천년을 살았다고 했다. 높이 38m. 둘레 8.75m의 거목은 무성했던 잎들을 다 털어내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지를 허공에 가득 펼쳐놓은 모습에서 서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늙은 나무는 풍만한 몸에 새끼줄로 만든 금줄을 둘렀다. 당산제가 열렸던 것일까.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이 배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나무가 배의 돛대 역할을 하여 마을을 지킨다고 여겨졌다. 나무는 은행 알이 열리지 않았다. 아주 옛날. 나무 옆에 우물을 파고 그림자가 그 물에 비치면 은행이 열릴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우물을 팠더니 난데없이 송아지가 빠져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배 밑에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라 하여 곧 우물을 매웠다. 일제강점기에는 몇몇 유지들이 나무를 베려고 하자 그 집안과 마을에 흉흉한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나무에 당산제를 지낸 다음에야 평온이 찾아 왔다고 했다. 그 만큼 나무는 신령스런 존재였다. 고개를 들고 나무가 이고 있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수많은 잔가지에 가려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뻗어있는 잔가지들은 나무의 나이처럼 많았다. 어떤 것은 굵고 또 어떤 것은 가늘었다. 작은 가지들은 허공에서 서로 엉키고 엉켜 커다란 그물 같았다. 마치 세상 사람들의 모습 같았다. 나무의 한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저것이 뭘까. 자세히 보니 움푹 페인 곳에 시멘트를 발라 나무의 심장을 치료 했던 것이다. 그 주위에는 끈끈한 진액이 흘렀다. 진액을 먹으며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는 아픈 심장을 돌덩이처럼 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항상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수액으로 이끼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어디 먹여 살리는 것이 이끼뿐이겠는가. 상처는 한 곳이 아니었다. 나무는 군데군데 큰 상처를 품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상처를 동반해야 한다. 사람이나 나무나 상처 없는 삶은 없는 듯 싶었다. 천년을 살았으니 그 삶이 오죽 맵고 아팠을까. 큰 상처가 있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생살이 돋는다. 생살은 두텁게. 강하게 자리를 잡는 법이다. 그래서 상처를 앓고 나면 그 자리는 더 강해진다. 삶도 그러하다. 맹자는 말씀하셨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괴롭히고 고난과 시련을 주어서 분발하고 인내케 하여 그의 그릇과 능력을 키워준다” 그것은 사람이나 나무나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그럼 큰 시련을 겪은 나무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은행나무가 영험이 있다고 여겼다. 신령스러운 그곳을 찾아와 소원을 말했다. 소원을 들어주고 걱정거리가 해결되면 선하게 살 것이라 다짐했다. 그렇게 당산나무에게 빌고 나면 신기하게도 소원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걱정거리는 잦아들었다. 정말 목신이 있어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은행나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에 독이 스며드는 것을 막고 선한 마음을 심어주었다. 그 선한 마음이 모이고 모여 나무를 더 신령스럽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멀리서 바람이 몰려왔다. 천년을 끓어 안고 살아온 나무는 작은 바람에 독특한 냄새를 풍겼다. 은은하면서도 쿰쿰한 냄새……. 딱히 말로 설명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코끝에 맴도는 냄새가 익숙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 냄새가 나를 착하게 만들었을까. 문득 하루하루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무를 향해 속삭였다. 감사하다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옅은 바람에 잔가지들의 싸르락 싸르락 사운거렸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처럼 멀고 아득하게 흘렀다.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던 겨울이 지나갔다. 봄이 성큼 다가 왔으니 나목의 혼(魂)도 툭. 투둑. 투두둑. 소리 없는 폭죽을 터트리며 화려하게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추위에 웅크렸던 사람들의 마음에 봄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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