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에는 손바닥만한 텃밭이 하나 있다. 요즘처럼 이른 봄에는 그 텃밭에서 잔대나 삽주. 방풍 따위의 약성이 있는 새싹이 올라오니 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뜯어 요리조리 해먹으며 춘곤증과 싸운다. 그러다 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 약용식물 옆에 상추나 열무. 근대 등을 심어 먹고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 그곳에 김장배추를 심는다. 하지만 기온이 낮은 산중이라 그런지 김장철이 되도록 잘 자라지 않아 한 번도 배추다운 배추로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속이 덜 앉은 배추들 중 큰 것으로만 골라 김장에 쓰고 남은 것은 그대로 두고 겨울을 보낸다. 그러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잊고 있던 밭에서 속노란 월동배추가 보이고 우리 가족은 그걸 뜯어 국도 끓여먹고 겉절이도 해먹는다. 우리 집 텃밭은 그렇게 일 년을 주기로 순환을 반복하고 강원도에 살 때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던 월동한 배추를 만나니 참으로 신기하고 그런 탓에 더 맛난 것 같다며 어머니가 더 좋아하셨다. 나이가 들면 추위를 이기는 것이 더 어려운건지 ‘올해는 유난히 더 춥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노래의 끝이 늘 그 놈의 텃밭배추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거기다 비닐이불을 덮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봄이 오자 그 비닐 속 배추는 모두 썩은 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어머니는 참담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안타까워하시다 드디어는 병이 나셨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은 월동배추의 강인함은 빳빳하고 아삭하게 씹히는 고소한 맛으로 나타나므로 마트에서 사오는 알배추 등의 맛과는 결코 비길 바가 아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월동배추 사건과 함께 병이 나신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치료를 받으면서 병세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병원 밥에 질려 식사량이 자꾸 줄어들고 기력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어떤 것으로든 입맛을 찾게 해드리는 것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저런 것을 다 해드려도 모두 싫다 하시니 어쩔 줄을 모르겠고 답답하던 차에 강진농부 김은규님으로 부터 온 봄동 담긴 박스를 생각해냈다. 상했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을 했지만 박스를 열자 그 속에서 아직 싱싱한 봄동들이 쏟아져 나왔다. 딱 벌어져 속내를 조금도 숨기지 못하는 봄동은 초록과 노랑이 적절히 잘 어우러져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으로 보인다. 그 꽃송이를 한 잎 한 잎 떼 내 씻고 얇게 썬 사과와 함께 새콤하게 무치니 상큼한 봄의 맛 그 자체다. 다행히 어머니도 좋아하신다. 생각지도 않게 어머니의 입맛은 그렇게 돌아왔다. 맛이 달고 아삭하니 씹히는 식감이 좋은 봄동은 다른 식재료들과도 잘 어울린다. 특유의 단맛이 있으므로 별도의 당을 첨가하지 않아도 좋으며 칼륨. 칼슘. 인 등이 풍부하고 항산화작용이 탁월한 비타민 A. C. β-카로틴 등은 일반 배추의 30배 이상 함유하고 있어 피부의 노화방지와 봄철의 나른함을 없애주기에는 최고의 채소라고 할 수 있다. 섬유질이 풍부하니 변비의 증상을 개선함은 물론이고 100g 당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채소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식재료 봄동의 우월함은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이겨내고도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잃지 않는 그의 성품에 있다.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개 외형상으로도 그만의 짙은 색깔과 강인함을 드러내지만. 이놈 봄동은 푸른 잎인가 하고 보면 노란색의 속살을 드러내고 도무지 고난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 같은 얼굴로 웃는다. 그래서 우리가 봄동을 먹으면 웬만한 어려움쯤은 다 이길 수 있는 저력이 길러지고 그날그날의 자잘한 피로를 회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봄에 자주 접할 채소 중의 으뜸인 봄동이다. 봄동무침을 드신 어머니가 오늘은 혼자서 머리도 감으셨다. 이제 어머니의 얼굴에서 봄동처럼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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