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책이 참 좋은 친구여서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과 친구로 지낸 시간이 족히 몇 년쯤은 되고. 오정희 작가의 <유년의 뜰>이란 작품에 반해 여성작가들의 소설만 읽으면서 지낸 시간도 꽤 오래였다. 그러나 한방건강학 공부를 하면서 몇 년은 눈 질끈 감고 오로지 건강에 관련해 출판된 책들만 보면서 지냈다. 시도 잊고 수필도 외면하고 그 좋아하던 소설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대보름 즈음에 우연히 우도로 귀농을 한 젊은이들이 농사지은 것이라며 보내준 땅콩을 받고는 어린 시절에 읽던 <땅콩껍질 속의 연가>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결혼이나 사랑의 안과 밖을 교차해 보여주었기에 이십 대였던 나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주제의 소설이었는데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지는 걸로 보니 나도 이제 더 이상 뭔가에 감동받을 나이는 아닌가 보다. 오래도록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주변을 정리하고 어딘가로 귀농을 한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감기 같은 것이 아니다. 오래 고민하고 긴 시간 준비하고 떠나도 먼저 있던 곳에서의 생활습관 유전자가 남아 새로 정착한 곳에 안착하지 못한 채 끝도 없는 갈등을 하게 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땅콩을 까서 입에 넣으면서 그 어린 시절에 읽은 땅콩과 연결된 책의 제목을 떠올리게 된 이유가. 안과 밖이 다른 세상. 귀농 전과 귀농 후의 판이하게 다른 삶은 다시 돌아갈 수가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는 세상이나 삶에 대해 가지게 되는 어쩌면 꾸어서는 안 되는 꿈과 같은 것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땅콩은 대보름 무렵에 부럼으로 꽤 인기가 높지만 옛 문헌에는 보름날 부럼으로 땅콩을 먹었다는 기록이 없다. 19세기 중엽에 발간된 <동국세시기>의 기록에도 대보름날에는 날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부럼으로 깨문다고 하였다. 20세기 초 <조선상식문답>에서야 비로소 땅콩의 다른 이름인 낙화생이 나온다. 추사의 <완당집>이나 다른 기록을 보더라도 땅콩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기껏해야 200여 년에 불과한 것으로 추측된다. 땅콩의 다른 이름인 낙화생(落花生)이라는 글자에는 땅콩의 생태가 그대로 들어있다. 이는 무화과(無花果)가 꽃이 피지 않고도 열매가 맺히는 것과 비슷하여 꽃이 땅에 떨어져 흙속에 묻히면서(사실은 수정된 씨방의 자루가 길게 자라 땅에 묻히는 것이지만) 땅콩의 알이 맺히는 그야말로 落花生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프라이드치킨이나 양념치킨에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한때는 오징어와 함께 맥주의 중요 안주였던 땅콩은 참깨나 들깨. 잣이나 호두보다 항산화기능이 높다. 또한 땅콩은 성질이 평화로우며 독이 없어 밥상에 늘 올리는 반찬들의 양념에 쓰였다. 땅콩버터라는 이름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빵과 함께 식탁을 점령했었다. 소화기를 보하는 힘이 있으니 소화시키기에 부담스러운 섬유질 등을 땅콩기름과 같이 먹으면 도움이 되고. 건조한 폐를 촉촉하게 해주는 힘이 있으니 때에 맞춰 적절하게 먹으면 좋겠다. 땅콩기름인 낙화생유가 콩기름 옥수수기름에 가격으로 밀리고 올리브유를 샐러드와 함께 먹는 젊은 사람들에 의해 배척당했지만. 그래도 땅콩은 기죽지 않고 살아서 제주의 성산항에 내리면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이는 섬 우도에서 귀농한 젊은 농부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땅 위의 꽃이 수정을 하고 그 씨방의 자루가 땅속에 보석 같은 땅콩으로 결실을 맺듯 도시에서 제주의 우도로 건너가 뿌리를 제대로 내린 젊은 농부들이 부르는 땅콩껍질 속의 연가가 들린다. 너무 고소하고 맛나서 나도 절로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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