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에 작은아들 H가 군에 입대했다. 창원에 있는 39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H는 운(?)이 좋게도 상근 예비역에 배정을 받았다. ‘상근예비역’이란 일정한 훈련을 받은 후에. 집에서 가까운 예비군 훈련 대대나 각 면에 있는 예비군 면대 본부로 출퇴근을 하면서 21개월간의 군 복무를 하는 제도이다. 보충역이 아닌 현역으로서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부러워하는 제도이다. 컴퓨터 추첨으로 결정된다는 이 제도는 마침 우리 지역에 상근예비역 자리가 하나 비게 되면서 H에게 이런 행운을 준 것이다. 상근예비역에 편입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H는 이런저런 생각 없이 정해진 날짜에 입대하기로 했다. 큰아들 Y는 학사장교 시험에 합격해서 졸업 후에 입대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은아들 H가 형보다 먼저 군인이 된 것이다. 작은아들 H는 정해진 입영 날짜 때문에 교수님들께 미리 양해를 얻어서 남들보다 기말고사를 앞당겨서 치르고 서둘러서 군에 입대했다. 대한민국의 아들로 거듭나는 방법 중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군 복무인 것 같다. 모병제가 아닌 징집으로 군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왕이면 더욱 멋지게 군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최근 우리 사회의 추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러 해병대를 지원한다거나. 아예 장교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는 처음부터 상근예비역을 선택했다. H는 시골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나오는 동네 아이들을 돌보며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몇 안 되는 성도님들을 모시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딱해 보였나 보다. 사실 우리 교회 같은 시골 교회들은 교인 한 명이 새롭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르신들만 계신 시골교회에 청년 하나가 더 들어오게 된다면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이겠는가? 필자는 그런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아들을 훈련소에 보내놓고 나서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제공하는 카페를 통해서 훈련과정과 일정 등을 상세히 받아 볼 수가 있었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인터넷 다음 카페 게시판에 올려놓기만 하면. 하루 이틀 만에 프린트해서 훈련병들에게 바로 전달되었다. 이제는 옛날처럼 편지를 들고 우체국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필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들에게 인터넷 편지를 써 주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다정다감하기 그지없는 아빠’라는 칭찬을 들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H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입대하기 서너 달 전에 만났다는 H의 여자 친구 E양이었다. E양은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인터넷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편지의 내용으로 볼 때. E양은 인터넷 편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손편지도 이틀 사흘 간격으로 계속 보내고 있는 눈치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E양의 편지를 읽으면서 아빠의 사랑은 저만치 밀려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은근히 질투까지 생겼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도 나처럼 20여 년을 같이 살아봐라! 지금처럼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일에 시시콜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걸?’ 아빠의 질투치고는 유치하다고 하겠지만. 고마운 마음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그 애들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H는 사격과 행군. 화생방 훈련과 각개전투. 총검술까지 웬만한 훈련들은 다 마친 모양이다. 23일에 수료식을 하고 그 다음 날. 상근예비역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서 아들의 훈련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중에 각개 전투 훈련 모습을 보면서 옛날 필자가 군대 생활하던 때가 떠올랐다. ‘엎드려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교관들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훈련병들은 거의 자동으로 자신들의 몸을 조국 강산 위에 내던져야 했다.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기타 철조망 통과 등을 하면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기어 다닐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 시절 함께 뒹굴던 나의 사랑하는 전우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1군단 포병으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8인치 자주포 포반장이었던 필자의 군대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너무 똑똑해도 손해 보는 것이 군대라던가? 필자는 이등병과 일병. 상병을 거쳐서 병장이 되려는 순간에 일반 하사로 뽑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가장 높은 계급은 병장인 줄만 알았었는데…. 단풍 하사라고 불리는 일반 하사의 모진 훈련을 다 받은 후에 필자는 858 포병 대대 브라보 포대의 하나포 포반장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그 시절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면서 부대의 명예를 위해서 MOS라고 불렀던 각종 포 사격 기술 평가 등을 위해서 밤낮없이 애쓰던 사랑하는 나의 전우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목소리라도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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