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갓은 청갓과 붉은갓 두 가지 뿐인 줄 알던 나에게 갓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인 날이 있었다. 결혼 초였는데 여수로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선물이라며 내놓은 것은 평소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굵고 큰 갓으로 담은 김치였기 때문이었다. 입에 넣자 코끝을 타고 정수리까지 뻗치는 톡 쏘는 매운 맛을 느끼게 해 준 그 갓김치는 나에게 전혀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게 해주었는데 한 마디로 눈물이 쏙 빠지는 매운맛이었지만 혀만 자극하는 기분 나쁜 매운맛이 아니라 뭔가 속에 웅크리고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김장을 할 때 배추 속 부재료로 넣거나 동치미의 부재료로 쓰는 외에 쪽파와 함께 버무려 쪽파 몇 줄기와 함께 둘둘 말아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 두는 갓김치가 경험의 전부였던 내게는 참으로 큰 변화가 온 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주 가끔은 유채와 갓을 구별 못 하고 어리바리하던 때라 더 그랬다. 항돌연변이의 효과가 있는 십자화과 식물 중의 하나인 갓은 따뜻한 성품을 가진 재료다. 갓이 가진 따뜻한 성질과 매운맛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 폐와 소화기를 돕는 역할을 하므로 특히 날이 차가운 이때 갓을 이용한 음식을 해먹으면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갓의 따뜻한 매운맛은 급만성기침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나 담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방광결석과 소변불통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기억해두면 좋을 것이다. 채소류 중에서는 비교적 단백질이나 칼슘. 인. 철분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A와 C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갓의 종자에 함유된 시니그린은 미로시나아제에 의해 머스터드오일이 되어 특유의 향과 매운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향신료로 사랑받고 있다. 며칠 전 김장을 했다. 텃밭에 심었던 갓은 뽑아서 김장 속 버무리는데 넣고 남은 것 조금은 제철 과일인 사과와 배를 넣고 물김치로 담가두었다.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일의 특성상 여기저기서 보내주시는 제철재료들이 제법 되는데 그 중에 여수의 지인으로부터 온 돌산갓도 마침 도착하였기로 김치를 담갔다. 현지의 생산자들이 담는 방식은 잘 모르나 내 나름으로 한 통 담가 놓으니 반찬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생각에 스스로 대견하다. 동치미나 갓물김치는 잘 익으면 국물과 함께 떠내서 국수를 말아 먹으려는 생각으로 지금부터 들뜨게 하고 김치말이 아니라도 탄산음료와는 다른 국물의 청량감을 어서 빨리 느끼고 싶어 안달을 한다. 하지만 돌산갓김치가 주는 소통의 느낌은 또 다르다. 하는 일의 불통이든 사람사이의 불통이든 불통으로 답답하던 것이 통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시원함을 경험하였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먹을 때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전국에 눈이 왔지만 지리산 골짜기에는 며칠간 더 많은 눈이 왔고 그 때문에 차를 큰 도로에 두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내릴 짐도 많고 다시 실을 짐도 많은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택배도 오지 않고 오기로 한 사람도 오지 않는다. 밖에 일을 보러 나가야 하는데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올 겨울엔 여느 해와 달리 눈이 더 많이 온다 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울고 싶지만 이런 일로 울 수도 없고 답답하다. 아침밥상을 차리며 김장할 때 같이 담갔던 돌산갓김치를 서너 줄기 꺼내 썰어 놓았다. 밥도 뜨기 전에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갑자기 찾아오는 찡한 매운맛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마도 눈 때문에 불편한 스트레스로 울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조금 불편하나 지리산이 내게 주는 그 많은 행복에 비하면 눈물 한 방울의 가벼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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