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거리에는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크리스마스트리의 깜박거리는 불빛이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성탄 트리를 꾸미기 위해 소나무 잔가지 위에 솜을 깔고 각종 장식물을 만들어 달기도 하면서. 뒷산의 이끼를 뜯어다 아기 예수님의 구유를 만들던 어릴 적 추억들이 새롭습니다. 연말이 되면 유독 유년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마도 그 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뜻한 사랑의 추억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떠올려지고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우리 인간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은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이 저미도록 그립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분. 지극한 사랑의 눈빛으로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각인된 사랑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쩌다가 저는 부모님 산소가 있는 중앙고속도로를 지나가게 되면 차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릴 적에는 장날이 늘 기다려졌습니다. 장날이면 아버지께서 고등어[꽁치] 한 손과 도넛. 과일을 사오시면 형님들과 다투어 먹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늘 부모님은 단 것과 신 것은 싫다 하시며 자식들에게 모두 내어주셨습니다. 어렸던 저로서는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부모님은 왜 싫어하실까 의아했지만 철없이 잘 먹었습니다.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부모의 ‘내리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식에게 헌신하는 사랑이기에. 자식이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비로소 부모의 참사랑을 깨닫게 됨을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님이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면 따뜻한 추억 속에서도 그립고 감사하면서도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부모에게 아이들은. 아득한 세월 저 너머에서 혈육으로 이어지는 인연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삶의 연결이자 부모가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영육을 내려 받은 분신으로 시간을 초월하는 영생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빵만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합니다. 아이가 험난한 이 세상에 홀로 남아도 부모에게 받은. 뜨거운 사랑이 가슴에 있어 이 세상을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은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는 환경은 더 열악해졌습니다.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게 되거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어른들은 늘 바빠서 자녀와 오순도순 대화하고 사랑을 나눌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가정에서 함께 나눌 공통 화제도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줄어들어 가족 제각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화 단절이나 세대 차이를 떠나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세상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을 가장 적정하게 줄 수 있는 부모의 절제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결핍되거나 과잉되어도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는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내 자녀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도 존중되고 배려되어야. 아이들이 다함께 올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과도한 애착이나 과잉보호는 오히려 자녀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하여 사회성을 기르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적정한 온도[사랑]로 보호해주는 온실과 같은 곳입니다. 가정은 가족과 함께 하는 작은 사회공동체입니다. 유년시절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형제간의 우의를 통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체득합니다. 또한 기본적인 교육과 인격을 형성하는 곳으로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사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핵가족화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학령기를 대비하여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사회성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교육의 출발점은 가정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아이들의 정체성을 기르는 공간. 집’이란 주제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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