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 이게 누구야 살아있었네. 요즘 어떻게 지내니? 바쁘게 지낸다구? 나? 나도 바쁘게 지내지. 오늘은 조금 한가해서 상림에 산책을 하러 나왔어. 참 너 함양 토박이라고 했지? 너 함양군민헌장이 있다는 것 알고 있었니? 아니. 국민교육헌장 말고 함양군민헌장 말이야. 모른다구? 나는 알고 있는데······. 내가 더 함양 토박이 같다. 어떻게 알았냐구? 상림 숲길을 걷다 발견했지. 숲길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비(碑)에 새겨져 있어. 잘 들어봐! 앞부분은 생략하고 읽어줄게. 1. 우리는 튼튼한 몸으로 부지런히 일하며 명랑하고 즐거운 가정을 이룩합니다. 2. 우리는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로 서로 돕고 믿는 이웃을 이룩합니다. 3. 우리는 어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옳고 바른 일은 내가 먼저 합니다. 4. 우리는 옛것을 아끼고 자연을 손보아 자랑스런 문화를 이룩합니다. 5. 우리는 농사를 개량하고 산업을 진흥시켜 기름진 고장을 이룩합니다.   참 아름다운 맹세들이지? 특히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정말 함양에는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만 살아가는 고장 같은 느낌이 들었어. 너도 함양 토박이니까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니? 아니라구?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을께. 나도 시골출신이라 산과 들을 보고 자랐지. 푸른 하늘과 파란 숲을 보면 마음속에 있는 어떤 욕심과 이기심이 조금씩 희미해지기도 하니까. 그러니 도회지 사람보다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을까? 너랑 전화로 수다를 떨다보니 목이마르네. 마침 약수터에 다 왔다. 물 한 바가지 마셔야겠다. 잠깐 기다려······. 어! 시원하다. 친구야. 오늘 함화루가 참 멋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무채색의 숲에 유일하게 오방색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함화루가 경남유형문화재 제258호라는 것은 알고 있지? 그것도 몰랐다구? 설마 농담이지? 조선시대 함양군의 읍성 남문이었대. 그것을 1932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은 것이래. 본래의 명칭은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으로 망악루(望岳樓)였는데 이리로 옮겨지면서 함화루(含和樓)로 고쳤다고 하네. 나는 함화루도 좋지만 망악루가 더 깊이 있고 멋있는 이름같이 느껴져. 그냥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 본래 함양읍성에는 동쪽에 제운루(齊雲樓). 서쪽에 청상루(淸商樓). 남쪽에 망악루 등 삼문(三門)이 있었는데 지금은 망악루만이 이곳으로 옮겨져 남아 있어. 참 아깝다. 읍성 누각이 다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누각들이 각각 제자리에 서 있다고 상상을 해봐. 참 멋있을 거야. 그럼 옛날 함양 읍성의 크기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구. 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그 누각을 보려고 몰려들었을지도 모르잖아. 상림이나 개평마을 혹은 남계서원처럼 말이야.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양에 놀러 온다구? 그것은 맞는 말이야. 나도 함양으로 이사를 왔잖아. 사실 처음에는 함양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은 몰랐어. 그냥 시골에서 살고 싶어 왔는데 와서 살아보니 참 좋네. 상림 숲에서 이렇게 혼자 산책하는 것도 좋구. 함화루를 바라보며 지리산을 상상하는 것도 좋구. 나 혼자만 신나게 떠들었네. 참 너 왜 전화했니? 그냥 문득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구? 고맙다 친구야! 나도 니 생각했거든. 같은 함양에 살아도 얼굴보기 참 힘드네. 언제 시간을 내서 점심이나 하자! 말 나온 김에 날 잡자구? 좋아 낼 시간되니? 내일 당장 만나자. 자꾸 얼굴을 봐야 있던 정도 안 달아나고 없던 정도 생기지. 그럼 낼 보자. 안녕······.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