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야릇한 점들이 무엇일까요? 정말 모르시겠다고요? 점자點字입니다. 점자가 뭐냐고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시각장애자) 구멍 난 이 점자를 손끝으로 만져서 뜻을 알 수 있도록 점으로 쓰여진 글자입니다. 위의 점자는 뭐라고 쓴 글일까요? 다음과 같습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웃지요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김상용(金尙鎔. 1902~1951)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에게 ‘왜 이런 산골에서 살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냥 웃음으로 답한다는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답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이해가 전달될까요? 왜 사냐건 웃지요 이 웃음 하나면 족할 것 같습니다. 만약 누가 내게 ‘함양에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그저 웃어야겠습니다. 살면서 느껴 알게 된 몇 가지를 말씀드려 볼텐데 같이 동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함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가까운 곳에 상림이 있어 좋습니다. 읍내에 살면 걸어서 십분 거리니 아무 때나 쉽게 찾아 갈 수 있어 좋습니다. 신라시대 때부터 시작된 천년의 숲이라 더 좋습니다. 왠지 생활이 공허하고 의미가 없고 머리가 아플 때 상림에 갑니다. 호젓한 변두리 숲길을 혼자서 천천히 삼십분 정도 걸으면 가슴이 아슴하게 무엇인가로 채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천년의 숲이 발에 닿는 곳에 있으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함양은 필봉산이 있어 좋습니다. 여명의 하얀 빛이 어둠의 깃들을 밀어내고 조금씩 밝아오는 새벽의 필봉산은 고적하여 능선을 타고 걸으면 상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높지 않은 야산이라 무리하지 않게 조깅하듯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산길을 걸으면 등줄기에 촉촉한 땀이 솟아오르고 몸의 리듬이 생기를 갖기 시작합니다. 새벽에도 좋고 한가한 오후도 좋고 어둑한 저녁시간이라도 쉽게 오를 수 있는 필봉산이 곁에 있어 좋습니다. 자연을 같이 하고 살 수 있으니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양은 한들 벌판이 있어 좋습니다. 한들. 커다란 들이란 이름조차 좋습니다. 백암산 월명산 삼봉산 오봉산 대봉산이 함양 읍내를 둘러 안고 한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아늑함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타지를 갔다 함양IC를 나와 한들에 들어서면 그림 같은 풍경에 안도감이 들며 ‘아. 함양. 내가 사는 곳에 마침내 돌아 왔구나’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일년내내 푸른 농작물들이 너른 들판에 자라고 있어 좋습니다. 가을엔 누렇게 익은 나락 벌판을 바라보면 풍요로움이 가슴까지 차오릅니다. 함양은 과수원이 있어 좋습니다. 읍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배 과수원이 있고 사과 과수원이 있어 좋습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노래처럼 하얀 눈송이처럼 배꽃이 바람에 날리는 낭만적인 과수원길이 있어 좋습니다. 주먹만한 태양이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매달려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는 시골 과수원 길을 어디에서 풋내음나게 걸어 보겠습니까. 함양은 제철 웰빙 먹거리가 많아 좋습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은 갖가지 산나물과 싱싱한 야채들이 산해진미로 홍수를 이루니 입이 저절로 벌어집니다. 국적불명의 수입산 먹거리와 인스턴트식품이 판치는 세상에 토종의 각종 야채와 식품을 사 먹을 수 있다니 행운과 축복을 받은 겁니다. 봄이면 드릅. 냉이. 고사리. 곰취. 참취. 취. 삿갓나물. 가죽나무순. 옻순. 표고버섯. 버찌. 오디. 앵두. 보리수. 매실. 복분자. 여름이면 딸기. 토마토. 수박. 참외. 복숭아. 블루베리. 포도. 가을이면 오미자. 복분자. 송이버섯. 밤. 사과. 배 등 몸에 좋은 먹거리를 철따라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웰빙도시입니까. 먹으면서 도시의 사람들이 왠지 불쌍하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함양은 오일장이 있어 좋습니다. 2일. 7일이면 장터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꽃 파는 아가씨도. 나무 파는 아저씨도 나오고. 톱과 낫과 칼을 가는 할아버지도 나오고. 펄떡펄떡 뛰는 생선도 가득 싣고 나오고. 할머니들이 오물조물 함지박에 집에서 기른 각종 야채를 담아와 길거리에 놓고 팝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아저씨도 잊지 않고 나오고 약초할매도 나옵니다.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사람 사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오일장이 열리고 있어 좋습니다. 함양은 동창회가 있어 좋습니다. 어딘들 동창회가 없겠습니까마는 며칠 전부터 읍내는 술렁거리고 각종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그날이 오면 신나는 운동회가 열리고 저녁엔 전국 유명가수가 시골까지 와 노래를 부르고 순이도 철수도 노래자랑을 하고 판이 벌어져 신명나게 춤추고 밤새도록 야연이 펼쳐지니 좋습니다. 가고파 2절처럼 ‘어디간들 잊으리오 내 고향 친구야. 보고파라 보고파’ 하며 만나는 불알친구의 때 묻지 않은 기쁨의 동창회가 있어 좋습니다. 함양은 119가 있어 좋습니다. 112가 있어 좋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그저 112를 눌러도 되고 119를 눌러도 됩니다. 아무데나 전화 걸어 사정을 말하면 “네. 어르신.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하고 조금 있으면 어디선가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함양입니까. 산골마을까지 어린이를 데리러 교육청 버스가 매일 오고가지요. 나이든 어르신들을 위해 매주 빨래세탁차가 와서 빨래해주고 가지요. 목욕차가 와 목욕해주고 가지요. 좋은 행사가 있으면 버스가 실러 오지요. 아픈 사람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차가 오지요. 도시락과 반찬을 가져다주러 오지요. 농기계 고쳐주러 오지요. 정기검진 받으라고 의료차가 오지요. 높으신 군수가 동네 잔칫날이면 오지요. 국회의원도 군의원도 와서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니 참 좋은 함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함양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라 좋습니다. 싱싱한 풀내음을 맡을 수 있고 갖가지 웃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리산의 산과 계곡과 강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람 사는 동네에선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나고 싸리꽃 냄새가 나고 벼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 와서 좋습니다. 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사그락사그락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와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온몸의 촉감이 살아나 바람과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양은 또 무엇보다도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로 그대로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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